카눈 ‘느림보 북진’ 물폭탄 몰아쳤다

카눈 ‘느림보 북진’ 물폭탄 몰아쳤다

김주연 기자
김주연, 장진복, 손지연, 박승기 기자
입력 2023-08-11 00:42
업데이트 2023-08-1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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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 후 15시간 넘게 강한 비바람
강원 영동 시간당 70~80㎜ 쏟아져
전국 시도에서 1만여명 일시 대피
오늘 첫차부터 열차 정상운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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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마을
물에 잠긴 마을 제6호 태풍 ‘카눈’이 상륙한 10일 대구 군위군에 쏟아진 집중폭우로 하천 제방이 유실돼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 이날 오전 9시 20분쯤 경남 거제에 상륙한 카눈은 경상권, 충청권, 수도권 등을 지나며 강한 비바람을 뿌렸다.
군위 연합뉴스
10일 오전 9시 20분쯤 경남 거제에 상륙한 제6호 태풍 ‘카눈’은 밀양, 대구, 충주, 서울을 매우 느린 속도로 지나가면서 15시간 넘게 강한 비바람을 뿌리며 전국 곳곳을 할퀴었다. 특히 강원 영동은 시간당 70~80㎜의 비가 쏟아지는 ‘극한호우’급 집중폭우가 이어졌다. 대구 군위군과 강원 동해안 등은 태풍이 쏟아낸 비에 곳곳이 물에 잠겨 그야말로 물바다로 변했다. 아울러 전국 곳곳에서 지붕이 날아가고, 난간이 쓰러지고, 맨홀 뚜껑이 튀어 오르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다만 사상 처음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태풍임에도 올여름 장마 때보다 인명 피해가 크게 줄어든 건 사전 대비와 정부·지방자치단체 지시에 시민들이 잘 따라 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3시쯤 최대 풍속 초속 24m로 강도 등급이 따로 부여되지 않는 수준으로 태풍이 약화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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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로 북상한 10일 울산 남구 가구거리의 한 가구점 지붕이 강풍으로 떨어져 있다.  울산 뉴시스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로 북상한 10일 울산 남구 가구거리의 한 가구점 지붕이 강풍으로 떨어져 있다.
울산 뉴시스
카눈의 영향으로 침수, 낙석, 고립 등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실종·사망 사례도 발생했다. 대구 군위군의 67세 남성 1명이 사망했고, 대구 달성군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던 주민이 소하천에 추락 후 실종됐다.

대구 군위군 효령면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A(67)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날 오후 1시 10분쯤 소방 당국은 다른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중 A씨가 하천에 떠 있는 것을 발견했,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심정지 상태였다. 앞서 효령면 일대 남천 수위가 상승하면서 주민 200여명이 대피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던 60대 남편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실종 장소 부근에는 아래 계곡으로 이어지는 도랑이 있어 당국은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하고 수색에 나섰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례도 다수 있었다. 낮 12시 45분쯤 군위군에서는 지하차도에 차량이 침수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 요청이 들어와 소방대원이 출동해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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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의 천연기념물 357호인 반송(盤松) 일부가 쓰러져 있다. 경북소방본부는 이날 오전 반송 일부가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안전 조치를 했다.  안동 연합뉴스
경북 구미의 천연기념물 357호인 반송(盤松) 일부가 쓰러져 있다. 경북소방본부는 이날 오전 반송 일부가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안전 조치를 했다.
안동 연합뉴스
경북 경산시 남천면의 한 지하차로에서도 자동차 1대가 침수로 고립되며 경찰이 70대 여성 운전자를 구조했다. 충북 영동군에선 국악 연수생과 관계자 53명이 불어난 계곡물에 세월교가 침수돼 야영장에 고립되는 일이 발생했다.

경남 창원에서는 빗물 압력에 솟구쳐 오른 맨홀 뚜껑이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날 오전 8시 5분쯤 대원동의 한 아파트 주변에 멈춰 있던 시내버스 안으로 갑자기 맨홀 뚜껑이 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당시 버스에는 운전기사와 승객 등 5∼6명이 타고 있었다. 승객이 앉아 있는 좌석 쪽이 아닌 시내버스 차체 중앙 부분을 뚫고 튀어 올라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강한 비바람으로 주택이 무너지기도 했다. 전남 곡성군에서는 한 주택 별채 건물의 벽면이 무너지면서 지붕이 한쪽으로 주저앉아 붕괴했다. 사고 당시 건물 안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주민 1명이 물건과 집기 등을 빼내다 넘어져 팔을 다쳤다.

세종시 나성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45층에 있는 카페 난간이 강풍에 심하게 흔들리면서 추락할 위험에 처하자 119 특수구조대가 긴급 출동해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기 동두천시의 한 교회의 철탑이 강풍에 쓰러져 주택 지붕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해 당국이 크레인을 동원해 철탑을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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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경남 창원에서 맨홀 뚜껑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솟구쳐 올라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간 모습. 승객 좌석 부분이 아닌 차체 중앙 부분이어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독자 제공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경남 창원에서 맨홀 뚜껑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솟구쳐 올라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간 모습. 승객 좌석 부분이 아닌 차체 중앙 부분이어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독자 제공
천연기념물도 피해를 보았다.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에 충북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가지 2개가 부러졌다. 꺾인 가지는 정이품송 중간 높이의 지름 15∼20㎝가량 되는 가지들이다. 경북 구미시의 천연기념물 ‘반송’(천연기념물 357호) 일부도 쓰러졌다. 이 반송은 나이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3.1m, 밑줄기 둘레 4.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반송 중 하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오후 11시 기준 일시 대피자가 17개 시도, 122개 시군구에서 1만 5411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중 7273명은 귀가했다. 도로 침수와 유실(63건), 주택 침수(30건), 상가 침수(4건) 등 시설 피해도 207건 발생했다. 태풍이 지나간 이후 피해 현황이 구체적으로 파악되면 규모는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태풍의 영향으로 도로 620곳, 둔치주차장 284곳, 하천변 598곳, 해안가 198곳, 21개 국립공원의 611개 탐방로가 통제했고, 항공기는 14개 공항에서 405편이 결항됐다. 여객선 97개 항로 127척과 도선 76개 항로 92척의 운항도 내내 중단됐다.

이날 첫차부터 KTX 118회 등 고속열차 161회, 일반열차 251회, 전동열차 44회의 운행이 중단됐다. 고속열차와 일반열차는 11일 첫차부터 정상 운행될 예정이다.
서울 김주연·장진복·부산 손지연·세종 박승기 기자
2023-08-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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