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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100명 중 1명꼴… “인지기능 변화 느꼈다면 조기치료가 핵심”

조현병 100명 중 1명꼴… “인지기능 변화 느꼈다면 조기치료가 핵심”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23-08-15 23:57
업데이트 2023-08-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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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증상과 치료 방법

현황
정신질환 65만명 중 18만명 진단
뇌 기능 이상에 환청과 망상 경험
급성기 놓치면 재발·만성 단계로
치료
급성 전 ‘전구기’에 적극적 치료를
약물치료 멈추면 1년 내 재발 30%
지역사회 ‘치료·회복·재활’ 필수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수학자다. 그의 친구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룸메이트 찰스뿐이다. 교수가 되고서는 정부 비밀 요원으로부터 소련 암호 해독 프로젝트를 받아 공을 세운다. 하지만 친구 찰스도, 비밀 요원도, 암호 해독 프로젝트도 모두 망상이었다. 그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이 영화는 병을 극복하고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수학자 존 내시의 일대기를 그렸다. 30여년간 내시의 삶을 지배한 조현병은 뇌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경 발달 장애의 일종이다. 전 세계적으로 100명 중 1명꼴로 생기는 흔한 병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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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국가정신건강 현황보고서 2021’을 보면 2021년 기준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 1813명이며, 이 중 조현병 진단 환자는 18만 2901명(28.1%), 분열형 및 망상 장애 환자까지 포함하면 23만 554명(35.4%)이다. 이 병은 뇌 성숙 마지막 단계에 접어드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가장 많이 확인되며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화돼 환자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친다.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5일 “우리 뇌는 세포가 얽히고설켜 회로를 이루고 있는데, 이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 연결성에 문제가 발생해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조현’(調絃)은 ‘현을 고르다’라는 뜻으로 거문고나 바이올린의 현처럼 연결된 우리 뇌의 신경 구조가 잘 조율되지 않아 정신적 혼란이 찾아오고 예민해진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증상은 환청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의미 없는 잡음이나 동물 소리일 때도 있지만 사람 목소리가 가장 흔하다.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로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누군가 자신을 욕하거나 해치려 하는 환청을 듣는다. 워낙 생생하게 들려 환자도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한 다. 뇌 기능 이상에 따른 피해망상과 환청임을 환자가 인정하지 않으니 치료를 받도록 설득하기가 어렵다.

김 교수는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환청 내용을 그대로 믿고서 그 소리에 반응해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며 “뛰어내리라는 환청을 듣고 실제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은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청에 사로잡히면 피해망상, 색정망상, 질투망상, 관계망상, 빈곤망상, 허무망상, 종교망상, 과대망상 등 다양한 망상을 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주의할 것이 피해망상이다.

2018년 12월 임세원 교수 살해범은 ‘의사가 머릿속에 있는 소형 폭탄을 제거해 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고, 2017년 모친을 살해한 40대 남성과 2019년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안인득도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인 최원종 역시 같은 증상을 보였다. 이들 모두 제대로 치료받지 않거나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환청과 망상은 약물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일부 환자들의 범죄는 치료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연이은 끔찍한 사고 탓에 조현병 환자가 모두 위험한 사람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범죄와 거리가 먼 이들이 대다수로, 융통성 없이 순진무구한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조현병은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답이다. 급성기 증상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수차례 재발하며 만성 단계로 넘어간다. 환청·망상 증상뿐만 아니라 희로애락 등의 감정 반응이 둔화해 무감각해지고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상호작용하지 못해 점차 위축되고 고립된다. 환자는 물론 가족의 삶까지 무너진다.

이건석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의 80% 정도는 급성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인지적·사회적·직업적 기능이 떨어지는 ‘전구기’를 경험하게 되며, 이 시기 자주 착각을 하게 되고 망상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이 늘거나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구기 변화를 감지하고 병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기능 저하를 막고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치료는 약물치료다.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져 조현병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는 약을 쓴다. 약 먹기를 꺼리는 환자들을 위해 한 달 이상 효과가 지속되는 주사제도 나왔다. 급성기 입원 치료 후에도 외래 통원치료를 하며 약을 복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환자 마음대로 약을 줄여 복용하거나 아예 먹지 않으면 1년 내에 30%가 재발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치료·회복·재활’ 삼박자가 맞아야 조현병 환자의 회복과 사회 복귀를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국내 조현병 환자 현황과 적정 치료를 위한 제언’ 연구보고서에서 “환자가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역 정신보건센터 사례 관리 인력을 증원해 적정 수준 이상의 사례 관리가 이뤄질 수 있게 하고, 회복기에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생활·주거·고용 복지 체계를 구축해 환자가 적절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수학자 내시처럼 조현병 환자도 적절하게 치료받으면 성공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병 위험 인자로는 유전적 요인·심리환경적 요인·소아기 외상 등이 거론되나 하나의 요인만으로 병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 교수는 “유전적 정보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에게 조현병이 있더라도 다른 한 명에게서 조현병이 나타날 확률은 50%”라며 “유전적 요인 외에 다른 요인도 많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실직, 따돌림, 좌절 경험, 대인관계 갈등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나 사회적 스트레스가 조현병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김 교수는 “조현병은 뇌에 이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신체 질환으로, 신체 질환은 누구도 예외가 없다”면서 “조현병에 편견을 가지면 그로 인한 불이익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2023-08-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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