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하시모토 시장, 자국 양심의 목소리 안 들리나

[사설] 하시모토 시장, 자국 양심의 목소리 안 들리나

입력 2013-05-23 00:00
수정 2013-05-2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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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위안부 망언’ 등이 자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역풍’을 맞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망언에 “역겹고 혐오스럽다”는 비난이 나온 데 이어 유엔 기구까지 나서 극우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한 따끔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어제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는 공식 견해를 통해 “(일본 정부는) 국민을 교육하고, 혐오 표현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오명을 뒤집어 씌우는 표현을 막으라”고 촉구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도 그제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한 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을 보고받은 뒤 정부의 대응책과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발언 등에 대해 질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 국제기구에서 다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유엔이 이 문제를 공식 거론한 것은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시장 등 일제의 침략에 대한 역사 인식을 결여한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 파문’에 국제사회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일 게다. 이번 기회에 유엔은 하시모토 시장에 대한 규탄 등을 담은 공식 입장을 채택하길 바란다.

국제사회만이 아니다. 오사카 시의회 의원들조차 “하시모토의 (위안부)망언이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있다”고 따졌다고 한다. 오사카변호사회 측도 “하시모토의 발언이 여성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고 변호사의 품위를 해치는 행위”라며 소속 변호사인 하시모토 시장의 징계를 청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인 지식인 4명은 어제 부산에서 ‘반(反)다케시마’ 기자회견을 열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양심선언’까지 하지 않았는가.

일본의 국수주의 정치인들은 자국 내 양심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할 것이다. 오죽하면 유엔까지 일본 정부가 혐오 발언을 막기 위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까지 했겠는가. 몰지각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궤변이 매일 울려퍼진다 해도 역사의 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궤변은 어리석은 일부 자국민들을 잠깐 홀릴 수는 있겠지만 보편적 양심을 지닌 대다수 일본인들과 세계인들에게는 비웃음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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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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