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쿠르드족의 교훈, 가슴에 새겨야/한준규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쿠르드족의 교훈, 가슴에 새겨야/한준규 워싱턴 특파원

한준규 기자
입력 2019-10-27 17:30
수정 2019-10-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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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규 워싱턴 특파원
한준규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 ‘철군 선언’으로 촉발된 시리아 사태의 ‘광풍’이 잦아드는 분위기다. 터키가 지난 9일 휴전에 합의하면서 사망자 600여명과 피난민 30여만명이 발생한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은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터키군과 쿠르드족의 무력 충돌에 대한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지만 봉합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쿠르드족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한 줄로 시작된 시리아 철군 선언으로 ‘독립’을 향한 100년 꿈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 시리아 북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쿠르드족은 2014년부터 미군과 함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대항했다. 이들이 1만 1000여명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IS 격퇴전에 뛰어든 것은 미국이 쿠르드족의 독립국을 세우는 데 지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IS가 괴멸했고 중동 지역에서 얻을 이익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했던 미군의 완전 철수를 발표하면서 쿠르드족은 졸지에 ‘토사구팽’당했다. 지난 5년여간 목숨을 걸고 미국을 도왔건만 미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쿠르드족을 버린 것이다.

이에 국제사회뿐 아니라 미 조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 능력과 행동거지는 딱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비난했고, 미 의회는 터키의 군사 공격을 강력 규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3일 “미군의 임무는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미군은 오직 중대한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을 때만 싸울 것”이라며 자신의 대외 정책 노선인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재차 강조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미국의 고립주의와 불개입 기조가 이미 버락 오바마 전 정부 때부터 나타났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정점을 찍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나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미국 내 광범위한 여론이 시리아 철군 등 고립주의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싱턴 싱크탱크 아랍걸프국연구소의 후세인 이비슈 연구원은 “긴 결별 과정이 시작됐고, 그 결별은 중동에서 시작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전 세계의 분쟁을 중재했던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 좇는 민낯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고립주의 전략의 희생양이 중동의 쿠르드족뿐 아니라 그동안 미국이 중시해 온 아시아나 유럽 등에서도 생길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한국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부동산 거래를 하듯 계산기를 두드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으로 이미 한미동맹에서 모종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됐다. 미국은 ‘공정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의 책임’을 강조하며 한 해 1조 389억원 수준의 한국측 부담금을 50억 달러(약 6조원)로 5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적도 동맹도 없는’ 냉혹한 국제사회의 진실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 등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면서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조선시대 역사에서 배웠다. 당리당략에 눈먼 정치권 때문에 국제사회의 변화에 늦게 대처하면 국가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말이다. 더 늦기 전에 편가르기를 멈추고 국가의 미래 먹거리뿐 아니라 변해 가는 국제 정세에 어떻게 대처할지 여야가, 우리 사회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더 늦으면 우리도 쿠르드족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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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seoul.co.kr
2019-10-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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