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여전히 ‘징후’를 무시하는 나라/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여전히 ‘징후’를 무시하는 나라/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입력 2019-04-28 22:30
수정 2019-04-2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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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대형 참사에는 어김없이 그것을 암시한 ‘징후’들이 있다. 큰 사고는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비슷한 원인과 성격의 작은 사고들이 반복해 나타난다. 1930년대 초 미국 보험회사 직원인 하인리히는 수천 건의 보험 상담을 통해 산업 현장에서 중대한 재해가 1건 일어나려면 그전에 동일한 원인의 경미한 사고가 29건, 그런 위험에 대한 기미가 300번은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산업 현장만이 아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흔히 징후는 무시되기 쉽다. 사람들은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리거나 축소한다. 아니면 ‘아전인수’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징후가 명백하게 나타나도 불감증과 편향성,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거나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예외법칙으로 스스로 비극을 불러들인다. 사람들에게 닥친 재앙의 대부분이 ‘인재’(人災)인 이유다.

정부까지 그러면 안 된다.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부터 지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대통령으로 뽑아 주고, 세금을 낸다. 정부까지 징후를 무시할 때 얼마나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는지는 ‘세월호 참사’가 말해 주고 있다. 정권을 무너뜨린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도 부정부패의 숱한 징후들을 스스로 외면한 탓이다.

지금은 어떤가. 수없이 반복된 경험과 다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징후’를 무시하는 나라다. 무려 20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의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사건은 치안에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막을 수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범인 안인득의 위협적 행동에 대해 수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동사무소와 LH임대주택 본사도 민원을 묵살했으니, 유가족의 말대로 “사실상 국가기관이 방치한 인재”였다.

포항지진도 마찬가지다. 지열발전 현장의 징후(미소지진과 규모 3.1의 경고지진)를 사업자측이 정부(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연구기관에 알렸지만,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소지진이 발생했을 때 무시하지 말고 숨겨진 단층대의 존재를 파악했다면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재난은 막을 수 있었으니 역시 ‘정부가 방치한 인재’로 드러났다.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가 일어나면 현장에 달려가 사과하고, 수습에 매달리고, 전형적인 뒷북치기와 형식주의인 재발방지 대책을 위한 TF팀이나 만들고, 아니면 남 탓이나 하는 여전히 말로만 ‘안전한 대한민국’이다. ‘사랑의 안전일기 범국민운동’을 시작한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고진광 이사장은 “안전이야말로 1%가 부족해도 100%를 잃게 되기 때문에 생명존중의 출발”이라면서 “안전을 방치한 적폐청산은 국민의 불신만 크게 할 뿐”이라고 했다.

정부가 외치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무너뜨리는, 나아가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나만의 정의, 나만의 공정’의 도덕 불감증과 아집과 오만의 징후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사가 그렇고, 정책이 그렇고, 집권층의 의식이 그렇고,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그럴 때마다 한 정치인(박지원 의원)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속담으로 경고를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책임을 전가하거나, 징후를 뒤집어서 ‘길조’(吉兆)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미국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그 착각이 징후를 무시하고, 그 무시가 재앙을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아 들판 전체가 물에 잠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대부분 힘없는 국민이 고스란히 치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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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도 국가도 작은 징후를 무시하지 말라. 징후는 우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조금씩 축적된 것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징후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이며, 더이상 늦으면 안 된다는 경고다. 그것을 외면하는 곳에서는 안전도, 정의도, 공정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내일은 어떤 재앙이 나에게 닥칠지 몰라 불안한 곳에서 살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면서 별로 바뀐 것 없는 정부를 점점 믿지 못하면서.
2019-04-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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