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칼럼]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안되려면

[박재범칼럼]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안되려면

입력 2009-12-10 12:00
수정 2009-12-10 12:2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기축년 달력이 마지막 한 장 남았다. 다사다난했다는 상투적 표현이 새삼스러운 한 해다. 공격적인 정치를 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국가 전체에서 갈등이 한껏 고조됐었다. 올 중반에는 북핵 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극에 달했다. 최근 세종시, 4대강 논란과 노조법 개정 문제가 뜨겁다. 한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라고 외국 특파원들이 말하는 게 실감난다.

이미지 확대
박재범 주필
박재범 주필
해외도 숨가쁘게 움직였다. 가장 큰 이슈는 유럽연합(EU)의 완전한 통합일 것이다. 조만간 코펜하겐 기후 회의에서 탄소 감축의 실마리가 풀리면 그것도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후변화주요국회의(MEF) 16개국이 지정한 ‘세상을 바꿀 7대 기술’도 의미가 깊다.

국내와 해외의 이 같은 흐름을 뜯어보면 차이가 한 가지 드러난다. 정치권의 시야다. 과거와 미래, 특정집단의 기득권 유지와 전체의 이익 등으로 비교된다. 해외의 경우 눈앞의 도전을 미래의 시각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한국전쟁보다 더 긴 시간, 더 많은 인명과 물질적 피해를 주고 받았던 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통합까지 이뤄냈다. 과거의 고통을 미래의 공동발전 역량으로 치환한 것이다. 또 온난화 등 지구적 문제의 해결에 힘을 모은다. 반면 한국에선 미래와 공생은 안중에 없다. 과거에 해온 게 편한데 왜 바꾸려 드느냐고 목청을 높인다. 너의 편만 좋은 일 아니냐고 핏대를 세운다.

최근 노조법을 둘러싼 접근방식을 보면 과거에서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30여년 전 늙은 사자로 전락했다. 영국병이 깊어 회생불능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실업자는 늘고 소득은 줄었다. 철의 여인 대처는 과감한 개혁에 나섰다.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과 나눠먹기에 메스를 가했다. 일부 노조에 돌아가던 이익을 국민 다수에게로 전환했다.

지금 우리도 한국병이 심각하다. 버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눠먹자는 사람은 다수가 돼버렸다. 전체 노동자의 5%에도 채 못미치는 거대노조는 95% 동료 근로자의 삶에 관심이 없다.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다면 세력화된 5%가 95%의 이익향상을 위해 기득권을 기꺼이 나눌 때 진정성이 인정된다.

세종시와 4대강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1970년대 초반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저항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목숨 걸고 반대했다. 얼마전 국회에서 4대강 회의가 열렸다. 어느 의원이 ‘책임지기 위해 실명을 남기자.’고 제안했다. 의원들은 퇴장했다. 실명의 기록화를 꺼린 탓이다.

우리의 지도층은 국민 전체의 미래 이익을 위해 사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내 편, 내 표만 계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증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손톱만큼도 기울이지 않는다. 싸움을 위한 싸움, 논쟁을 위한 논쟁을 끼리끼리 모여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국민은 이제 ‘당신들은 과연 우리의 미래를 놓고 싸우고 논쟁하는가.’라고 정면으로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해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자기 성공의 희생자(victim of his own success)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거둔 성공에 오히려 치이는 역설을 일컫는다. 지금 한국은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될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10여년째 GDP가 제자리인 게 증거다. 국민이 살려면 새로운 성공방정식이 필요한 때다. 시대는 소처럼 천천히 걷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달력을 한 장 뜯어내듯이 한순간에 급변한다.

박재범 주필 jaebum@seoul.co.kr
2009-12-10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