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인다. 아찔할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상대팀들은 그의 성장 속도에 공포감을 느낀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KCC의 루키 하승진(24·221.6㎝)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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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 떠나자 출전시간 늘어 진가 발휘
2008년 2월 신인드래프트 때와 지금은 다른 선수나 다름없다. 당시 몸무게는 161㎏. 근육량과 체지방 등 모든 지표가 운동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5분만 뛰어도 기진맥진할 정도였다. 삼일중 때 허벅지 뼈가 부러진 후유증으로 골반뼈가 틀어져 ‘뒤뚱거리는’ 느낌이 들 만큼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전담 트레이너인 남혜주 박사와 흐트러진 밸런스를 되잡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5월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 10㎏을, 7월 팀에 복귀한 뒤 14㎏을 뺐다. 현재 몸무게는 135㎏ 남짓. 2년 사이 26㎏을 뺀 셈이다.
시즌 개막 때까지 하승진은 한 시즌을 버텨낼 몸을 만들지는 못했다. 지난해 12월 중순 새끼발가락 골절 부상을 당한 것이 외려 다행. 이때 집중적으로 체력을 보강했다. 때마침 서장훈이 전자랜드로 떠나면서 출전시간도 늘었다. 그가 비로소 농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
플레이오프(PO)에서 하승진은 한 단계 도약했다. 6강과 4강 PO에서 서장훈(전자랜드)과 김주성(동부)을 거푸 상대하면서 몸이 먼저 반응했고 머리로 기억했다. 하승진은 “두 선배를 상대하면서 1년치를 한 달 만에 배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습능력이 돋보였다. 하승진은 6강과 4강PO 1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2차전에선 보란 듯이 갚아 줬다. 삼성과의 챔피언결정 1차전에서도 더블팀에 막혀 4개의 턴오버를 쏟아냈고 14점에 그쳤다.
●특유의 ‘즐기는 농구’도 진화에 도움
그러나 2차전은 달랐다. 베이스라인 가까이 자리를 잡아 더블팀이 들어올 여지를 줄였다. 수비와 얼굴을 맞대다가 몸을 홱 돌린 뒤 공을 받아 슛을 던졌다. 실책은 1개뿐. 20점을 올렸다. 하승진은 “허재 감독님과 (추)승균이 형이 가르쳐준 대로 했다. 농구인생의 소중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이 내린 하드웨어’는 사이즈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유연성이 남달리 좋다. 운동이 과하면 근육이 뭉치기 마련인데 승진이는 외려 부드러워진다. 피로회복 속도도 평균 이상”이라는 것이 남 박사의 설명. 특유의 ‘즐기는 농구’도 진화를 가능케 했다. 남 박사는 “승진이는 경기에서 에너지를 얻는 선수다.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기는커녕 설렌다.”면서 “체중을 120㎏대로 줄이고 하체를 보강하는 한편 명치에서 복근, 허벅지에 이르는 코어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수년내 미프로농구(NBA) 복귀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유택 전 대표팀 코치는 “이제야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무기’인 데다 영리하다. NBA에서도 센터에게 화려한 테크닉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근력과 기본기만 보강한다면 도전할 만하다.”고 말했다.KCC(1승1패)-삼성의 챔피언결정 3차전은 22일 잠실에서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09-04-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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