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주변 조선시대 도로·민가터 확인

숭례문 주변 조선시대 도로·민가터 확인

입력 2008-11-26 00:00
수정 2008-11-2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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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 탄 숭례문을 복원 정비하면서 함께 벌이고 있는 발굴조사에서 숭례문 동서 성벽의 기초와 조선 후기의 도로,조선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민가(民家) 터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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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복원현장에서 열린 ‘숭례문 발굴조사 1차 설명회’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의 민가터를 살펴보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복원현장에서 열린 ‘숭례문 발굴조사 1차 설명회’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의 민가터를 살펴보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5일 발굴 현장에서 2010년까지 3년 계획으로 진행 중인 숭례문 발굴조사의 1차 연도인 올해 숭례문 내·외부 800㎡(250평)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특히 현재의 지표 30~60㎝ 아래서 숭례문을 통과하던 조선후기 도로 표면을 확인했다.도로는 갈색 사질토를 6~8차례 켜켜이 쌓아 130~140㎝ 정도로 바닥을 다졌고,꽤 큰 부정형의 박석을 덮어 노면을 포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찍은 사진을 보면,이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민가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이번 조사에서 발견한 3동의 민가에서 구들시설과 배수시설 등을 찾아냈다.

 조사단은 또 1908년과 1911년쯤 일제가 철거한 숭례문 성벽의 기초부를 확인했다.

 이밖에 이번 조사에서 백자향로를 비롯한 백자 제기(祭器)와 분청사기,청화백자 등 조선 초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다양한 도자기류와 기와편,전돌편이 나왔다.

 조사단의 신희권 책임 조사원은 “이번 발굴을 통해 조선 후기 숭례문 주변 도로면의 높이와 당시 축조기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숭례문 주변 지형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2년 동안 추가 발굴이 이루어지면 조선 전기에서 한말에 이르는 숭례문 주변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8-11-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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