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25일 대서양 횡단하느라 이 지경일줄 몰랐다니까요”

“25일 대서양 횡단하느라 이 지경일줄 몰랐다니까요”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4-22 08:26
업데이트 2020-04-22 08:2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영국 맨체스터에 살던 엘레나 마니게티와 라이언 오스번은 2017년에 평생의 꿈이었던 요트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요트를 샀다. 지난달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를 떠나 대서양 건너 카리브해로 향했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양쪽 부모, 친구들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궂긴 일은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25일 동안 바다를 떠돌며 바깥 세상과 간헐적으로 연결돼 도통 몰랐다. 지난달 중순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정박하려고 무전 교신을 하다 국경이 통제됐다는 것과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19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엘레나는 “(떠났던) 2월에 중국 바이러스를 들었지만 제한된 정보 탓에 우리가 25일 뒤 카리브해에 당도할 때쯤이면 다 끝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고, 라이언은 “도착하고서야 끝나지도 않았고 온 세상이 감염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엘레나의 고향은 코로나19로 2만 5000명 가까이 희생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다.

둘은 처음에 카리브해 프랑스령 섬에 닻을 내리려 했는데 국경이 통제돼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몇 안 되는 여행객이 지역 주민을 감염시킬까봐 섬 사람들이 겁을 낸다고만 생각했다. 뱃머리를 그레나다로 돌린 뒤 4G 휴대전화가 터지는 지점을 찾아내 배를 멈춰 세웠다. 여기에서야 감염병 공포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엘레나는 “친구 한 명이 우리가 향하는 생빈센트에 이미 와 있었다. 그가 (당국을 접촉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 10시간 만에야 정박할 수 있었다. 내가 이탈리아 국적이라면 거기를 몇 개월 전 떠났더라도 퇴짜를 맞았을 것이라고 친구가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다행히 둘의 보트는 GPS 추적 경로 데이터를 갖고 있어 이탈리아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마침내 25일 만에 마른 흙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롬바르디아에 있는 엘레나 가족이 걱정됐다. 어렵사리 전화로 연결된 아버지는 놀라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향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곳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고향 마을을 다룬 기사를 보내줬다. 충격 자체였다. 관이 없거나 묘지의 여유가 없거나 화장터 공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알아온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다행스럽게 엘레나 가족은 무사하고 6주 넘게 집 밖에 나서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나 세인트 빈센트에 머물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세상 어디를 가도 반겨줄 곳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6월이면 코로나19가 잠잠해질 수 있지만 그때는 허리케인이 시작된다. 해서 둘은 조금 더 북쪽으로 이동해 카리브해를 돌아볼 작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