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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봄밤/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봄밤/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05-12 23:02
업데이트 2016-05-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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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시골집에 가면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아파트촌의 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뻣뻣했던 오감이 밤 깊어 제자리를 찾는다. 멀리 무논에서 몰려오는 개구리 떼창. 목이 째져라 합창했다 뚝 그쳤다, 정해진 리듬을 탄다. 가만 듣고 앉았으면 멍석을 깔아도 되겠다 싶게 신통해지는 내 감각. 풀숲에 엎드려 선창(先唱)을 맡은 놈, 무논에 좌정하고 화음의 절정을 뽑는 녀석. 당장 쫓아가 잡아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개구리 떼창 끊어지면 잽싸게 끼어드는 산비둘기. 앞산을 옆방으로 옮겼을까 또렷해지는 울음소리. 감각의 굳은살을 벗기면 절로 되찾아지는 신통력이다. 비비추 덜 자란 잎에 달팽이 기는 소리까지 알아챌 봄밤이다.

귀만 밝아지는 게 아니다. 시골에서는 밤 깊어 더 잘 보인다. 보름달 없고 가로등도 먼데 안마당 접시꽃 꽃대에 투망을 짠 거미줄이 다 보인다. 빛투성이 도시에서라면 내 시력으로 도무지 건질 수 없는 디테일!

침묵 속에 더 많은 소리. 어둠 속에 더 완연한 몸짓. 글 한 줄을 안 읽어도, 멍청히 귀만 열고 누웠어도 시골 봄밤은 선생이다. 봄도 깊고, 밤도 깊고, 오랜만에 마음도 깊고.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05-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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