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나의 즐거움은 논밭으로 에워싸인 낯선 마을길을 문득 지나쳐 보는 것이다. 흙땅에서 벌어지는 고요하고 치열한 가을의 일은 얼마나 갸륵한지.시월은 형제자매 줄줄이 딸린 가난한 집의 큰누나 큰언니 같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푸른 물기를 비워내고 제 살을 내리는 때. 시월이 걸어가는 저 뒷모습 좀 보라고,
속수무책 오르는 서울 집값만 문제가 아니다. 대책 없이 곤두박질치는 시골의 땅값도 문제가 심각하다. 개정 농지법의 후폭풍이다.민심이 얼마나 흉흉한지는 추석 연휴에 시골을 다녀왔다면 알 만하다. “서울 집값은 끌어올리고, 지방 농지값은 끌어내리고. 초양극화 부동산 정책이냐.” 원색적인 성토가 끓는다.이재명 대통령은
지인이 시금치를 한아름 주고 갔다. 여름비에 장차게 뻗대는 속도를 감당 못하니 뽑아다 먹으라 했다. 풀 한 포기 뽑아 주지 않고 남의 밭을 휘젓기는 염치 없는 일. 그랬더니 아침 이슬 깨기도 전에 휘뚜루마뚜루 뜯어서는 놓고 갔다.시금치를 다듬는데 목을 뽑아올린 꽃대궁이 보인다. 그래, 너도 꽃이었지. 줄기인지 분
자주 꼬부라지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이 문장을 쓴 시인은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을 돌아 걷는다.천년 유적이 아니면 어때서. 다 보고 가도 좋아요, 안마당이 넘어다뵈는 담장. 실금 사이로 기어이 돋은 민들레.낮아서 호락호락했던 담벼락에는 탐스러운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렸
교외의 시골길에서 어스름 저녁을 마주치면 횡재한 것 같다. 잠귀 밝은 동네 누렁개한테 쫓겨나기라도 하면 큰일. 자박자박 발소리를 낮춰 동네 한 바퀴를 조용히 돈다. 잊어버린 내 발자국 소리를 내가 듣는 즐거움은 덤이다.분칠하지 않은 밤을 목격하는 일은 설렌다. 하루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듯 석양의
X(옛 트위터)에 처음으로 계정을 만들었다. 이재명 대통령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대체 언제 X에 글을 쏟아내는지 궁금했다. 대부분 이른 아침과 저녁 시간. 공식 업무가 없는 시간을 쪼개 정책 메시지를 올리고 있었다.아침 신문에서 주목한 이슈를 콕 집어 곧바로 국민 의견을 묻기도 한다. 즉흥적이라는 비판이 없지
반듯했던 글씨가 형편없어졌다. 자주 쓰지 않아 퇴화된 내 글씨를 물끄러미 보는데 왜 엄마의 글씨들이 겹칠까.엄마의 글씨를 보는 일은 귀했다. 명절이나 집안 잔치로 큰 장을 보러 가던 아침, 내 혼수품들을 적어 보던 밤.쓰다 남은 공책에 엄마는 사야 할 것들을 연필로 꼭꼭 눌러썼다. 밥을 안치듯 글자를 앉혔고, 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1심에서 관련자 전원이 무죄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장은 지귀연 부장판사다.그가 누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뒤 여권의 표적이다. 위헌 논란이 뜨거운 내란전담재판부의 진앙지다. 여당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지 않았어도 판결은 같았을까.
시골집에서 김장 김치가 올라왔다. 생굴에 시원한 맛이 도는 쪽일랑 먼저 먹고, 양념이 무거운 쪽일랑 나중에 먹고. 말 안 해도 수십년 불문율. 봄날 처마밑 제비새끼도 아니면서 나는 어머니의 한평생 레시피를 거저 받아먹고 있다.수화기 너머 어머니는 “내 선물이다” 하신다. 미안해하지 말아라, 몇 번이나 더 해주려나
누구에게나 오는 시월은 누구에게나 다른 빛으로 익어 간다. 나의 시월은 궁둥이가 새까만 솥냄비로 익어 간다.풀모기에 발목을 뜯겨 가며 주워 왔을까. 이즈막 우리집 장독대에는 알밤이 소복한 됫박이 날마다 놓여 있었다. 미끄러지게 물광 나는 풋밤으로도 가을은 움푹움푹 발이 빠지게 깊었다.저녁상을 일찍 물린 밤에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