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 순회특파원 세계의 법원 가다] 고종, 특사파견 독립호소문 배포

[정은주 순회특파원 세계의 법원 가다] 고종, 특사파견 독립호소문 배포

입력 2010-02-16 00:00
수정 201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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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만국평화회의란

│헤이그 정은주 순회특파원│“법과 정의, 평화의 신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먼 나라에 왔다.”(1907년 7월5일 만국평화회의보 ‘축제 때의 해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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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준·이상설·이위종(윈쪽부터) 헤이그 특사 3인의 사진을 1면에 실은 1907년 7월9일자 만국평화회보.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준·이상설·이위종(윈쪽부터) 헤이그 특사 3인의 사진을 1면에 실은 1907년 7월9일자 만국평화회보.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고종 황제는 1907년 6월15일~10월18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World Peace Conference)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특사 3명을 파견한다. 법관양성소 제1회 졸업생인 평리원 검사 이준(48), 의정부 전 참찬 이상설(37), 주러시아 공사관 참사관 이위종(20)이 그들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상트 페테르부르크, 베를린, 브뤼셀 등을 기차로 달려 두 달 만에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이들은 회의장 입장조차 거부당했다. 초청장이 없다는 게 공식 이유였지만, 일본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당시 참석자는 회고한다.

그러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6월30일 ‘헤이그에서의 한국독립호소문’을 프랑스어로 발행해 45개국 대표 239명에게 보냈다. 을사늑약은 ▲고종황제의 승인 없이 ▲일본이 무장 병력을 앞세워 ▲법률을 무시한 채 체결돼 무효라는 내용이었다. 출입기자단이 발행한 평화회의보가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 ‘축제 때의 해골’이라는 제목으로 호소문과 이위종 인터뷰를 보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07년 7월14일 오후 7시 이준 열사는 갑작스레 헤이그 호텔방에서 사망했다.

당시 네덜란드 신문은 뺨에 난 종기수술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는 할복 자결로 보도했다. 사인은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이 호텔에는 1995년 8월 이준 열사기념관이 세워졌다.

ejung@seoul.co.kr
2010-02-1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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