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퇴계를 만나기 위해서 계상서당을 찾았을 때에는 마침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봄비는 율곡이 머무를 때까지 줄곧 계속되어 율곡은 꼼짝없이 봄비에 갇혀 2박 3일을 보낸 셈이었다.
더구나 율곡이 떠날 무렵 아침에는 흰눈까지 내렸다. 따라서 율곡이 계당에 머물러 있을 때는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은 ‘불사춘(不似春)’의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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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퇴계는 자신이 태어난 온계(溫溪)의 동북쪽 초당골에 단칸 서당을 짓고 이를 계상서당이라 이름하고 그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찾아오는 제자들을 맞고 있었다.
이 온계의 속명은 토계(兎溪). 이곳에 머물러 살기 시작하였던 것은 퇴계 나이 51세 때부터였는데, 이때부터 퇴계는 토계의 ‘토’를 물러갈 퇴(退)로 고친 후 자기의 호를 ‘퇴계’라 정하였던 것이다.‘퇴’는 ‘물러선다’는 뜻이니, 이후부터 벼슬에서 물러선다 하여 ‘퇴거계상(退居溪上)’의 뜻으로 자신의 자호를 정하였던 것이다.
계상서당을 짓고 나서 마침내 청년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자 퇴계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자신의 심정을 술회하고 있다.
“…옛집 새로 옮겨 이 물가에 지으니/그대 허술한 집 찾아와서 어찌 견디느냐고 묻는구나.
도깨비와 지네는 누가 발이 더 많은지 알 수 없고/오리와 학의 다리를 어찌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만권 책의 훈기를 내가 경모하니/한바가지 물로 사는 삶에도 진실한 기쁨을 느끼네.
스물여섯해 전 마음먹었던 것을 오늘 되새겨보매/근심은 동해물로 밀려와 측량할 길이 없구나.”
이 시를 통해 퇴계가 20대의 청년시절에 이미 만권의 책을 읽으며 ‘한 바가지의 물로 사는 청빈한 삶을 꿈꾸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퇴계는 19살 때부터 이미 ‘산림 숲 속 초당에서 만권의 책을 홀로 읽으며 다름없는 한 생각에 10년이 넘었도다.(獨愛林廬萬卷書一般心事十年餘)’와 같은 시를 짓지 않았던가.
마침내 ‘사나운 말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가시밭의 거친들’에서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던 율곡은 계상서당에 이르러 퇴계를 만나자 스승으로서의 예를 갖춰 삼배를 올린 후 사제지간의 연을 맺는다. 이때 퇴계는 58세의 노인이었고, 율곡은 23세의 청년이었다.
인사를 올리고난 후 율곡은 스승 퇴계에게 시 한수를 헌사(獻詞)한다. 그 아름다운 헌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