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의 전제조건/이성호 연세대 교수

대학개혁의 전제조건/이성호 연세대 교수

이성호 기자 기자
입력 1995-05-02 00:00
수정 1995-05-0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전시효과 노린 개혁안 남발말라”/타대학 흉내내기·「순서매김」등 고질병 먼저 고쳐야

정부에서는 조만간에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밝힐 모양이다.아직은 베일에 가려있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래저래 들리는 얘기로는 가히 메가톤급 개혁안이 나올듯 싶다.과거 5공이나 6공,그 어느때보다도 교육개혁 의지가 강한 문민정부이기에,발표에 거는 국민의 기대 또한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교육개혁안 가운데는 대학을 근원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내용도 꽤나 많이 포함될 듯 싶다.

○용기있는 홀로서기 필요

그러나 그 어떤 개혁안이 나온다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학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개혁안이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것은 이미 지난날 우리가 뼈저리게 체험한 바이다.그렇다고 해서 법률적으로,제도적으로 대학을 구속하는 개혁안이 나와도 그것은 곧바로 대학의 생명선인 자율을 억제하고 또한 그에 따른 내면적인 저항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부가 그 어떤 개혁안을 발표하든간에,그리고 그에 따라 각 대학이 그 어떤 개혁을 시도하든 간에,개혁을 추구하는 대학의 기본적인 자세로는 우선 첫째로 대학의 본질적인 사명과 기능에 기초한 선한 양식을 최우선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참으로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그래서 대학의 교수들은 어떠한 책무를 기본적으로 수행하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가치에 기초한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야 대학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누어먹기식의 왜곡된 평등주의,학생을 위한다는 위장 아래 자행되는 교수들의 편의주의,어떻게든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시키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식의 안일한 최소요건충족지향주의 등을 과감하게 떨어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모든 대학은 전시효과적인 개혁을 시도하거나 또는 그렇게 해야만 일단의 부류에 끼일 것 같아 맹목적으로 어떤 개혁을 시도하는 위선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대학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다.왜,우리네 대학들은 각기 저마다 특성을 살려 용기있게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지 못하고 일부 선진대학들이 무엇을 하면 그것을 꼭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는가? 즉 따라가는 순서마저 늘상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힘이 부족해서,힘있는 대학들이 앞에 서서 나가면,그 뒤에서 별로 힘안들이고 따라가기가 쉬워서인가? 진정 그들 스스로 우리네도 그 어떤 다른 대학 못지 않게 대학으로서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면 보다 용기있는 홀로서기를 해야할 것이다.

○대학평준화 상당히 진전

셋째,밖에서 대학을 보는 시각이 바뀌어져야 한다.최소한 인습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이를테면 무슨 대학,무슨 대학 하는 식으로 쭉 순서를 열거하는데 있어 해방이후 몇십년 동안 그저 인습적으로 구전되어온데서 벗어나야 한다.예컨대 그러한 순서는 학과별로도 크게 다를 수도 있고 캠퍼스 환경별로도 크게 다를 수 있다.특히 그러한 순서매김이 대체로 입학생들의 학력성적에 기인한 것이라면 우리는 속히 그런 구태의연한 인습에서 벗어나야 한다.예컨대 지금은 교수의 평준화가 꽤나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능하고 훌륭한 교수들이 전국대학에 산재해 있다.그럼에도 그들이 몸담고 있는대학이 순서매김의 앞자리 대학에 들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들이 능력없는 교수로 인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정부가 먼저 깨고 나서야 한다.또한 이러한 대학에 대한 인습적인 순서매김 의식을 기업에서도 과감히 불식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즉 우리네 모든 대학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보다 엄격한 진정한 평가와 인식이 다양한 기준에서 이루어져야 대학개혁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넷째,대학은 정치성에서 벗어나야 한다.총장·학장을 선거로 뽑는다고 해서 대학의 민주화나 자율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직접투표로 안 뽑아도 대학의 민주화나 자율화는 가능하다.총장·학장을 직접투표로 뽑는 과정에서 성숙되지 못한 정치적 행위 속에 교수들 스스로 매몰되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그 어떤 대학개혁도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또한 만약에 로비라는 미명아래 대학 총장들이 세칭 힘있는 높은 사람들을 각각 등에 업고 빽으로 연줄로 부당한 특혜를 입으려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왜곡된 정치적 자세를 가져서도대학 개혁은 어렵다.그리고 교수들도 그러한 왜곡된 정치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교수들이 주도하는 대학개혁은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대학의 정치적 중립화는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경우보다는 안에서 스스로 확보해나가는 쪽의 몫이 더 큰 것이다.

○정치성에서 벗어나야

끝으로 대학은 개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정부의 막강한 힘에 의존하여 또한 그러한 힘을 팔아서 교수를 다스리고 학생을 다스리고 대학행정을 이끌어왔던 어두웠던 시대의 대학관리에 대한 향수를 느끼면서 개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한 대학개혁은 어렵다.물론 그렇게 된데에는 지난날 정부의 대학정책에 귀속되는 책임이 더 크다.그렇기에 이제 대학의 자율을 극대화하면서 진정한 대학개혁을 추진하려는 문민정부에서는 대학의 지난날의 뼈아픈 상처에 대한 잔흔을 고려해서 모든 대학을 「시장경제 원리 도입」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위협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1995-05-02 1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