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되면 연락 끊어… 상인들 소송
일부 당선자 ‘일감 몰아 주겠다’ 제안
“에스크로제 등 안전장치 도입 필요”
#35년째 인쇄소를 운영하는 A(64)씨는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 군소정당 후보의 현수막과 명함 등 홍보물 제작을 맡았다. 선거가 끝나면 잔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총 3억원어치의 홍보물을 제작했지만 실제 받은 돈은 2억원에 그쳤다. 강씨는 “서울시장과 대선까지 출마했던 사람이 직접 계약해서 믿었는데, 선거가 끝나자 계속 돈이 없다며 버텼다”고 털어놨다.
#B(35)씨는 10년 전 지방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의 벽보와 리플릿 등의 제작을 맡았다. 후보자는 선거가 끝나면 잔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낙선 뒤 연락을 끊었다. 김씨는 민사소송까지 걸어 승소했지만 600만원 중 200만원만 겨우 받아냈다.
선거철마다 벽보와 명함, 현수막 등 홍보물을 제작하는 소상공인들이 후보자에게 대금을 떼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낙선하면 연락이 끊기고, 당선돼도 지급이 지연되는 사례가 이어지자 업계에서는 정치 관련 작업 자체를 기피하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쇄물·영상 제작 업계에서 선거 홍보물 제작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상대적으로 계약 금액이 크지만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이 대금 지급을 미루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영상 제작자 백모씨는 “낙선한 후보가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라’며 견적의 절반만 주겠다고 한 적도 있다”며 “소상공인을 위한다던 후보들이 가장 앞장서서 소상공인 뒷통수를 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당선자는 대금 대신 부적절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인쇄소 대표 C(51)씨는 “시장에 당선된 사람이 ‘시 관련 일감을 몰아주겠다’며 대금을 퉁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문제는 선거 캠프의 일회성 구조와 맞물려 반복되고 있다. 실제 계약과 작업은 캠프 실무자를 통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조직이 해체되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김시월 건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선불제가 어렵다면 선거관리위원회 등 중간 주체가 후보자로부터 미리 돈을 받고 작업물이 문제 없이 나오면 소상공인에게 돈을 전달하는 ‘에스크로제’ 등 안전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법원은 지급 능력이나 의사 없이 홍보물 제작을 맡기는 행위를 사기로 본다. 대전지법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 홍보기획 용역과 홍보물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후보자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 인쇄 대금 약 40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무소속 후보자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세줄 요약
- 선거 홍보물 대금 미지급 반복
- 낙선 뒤 연락 두절, 당선 뒤 지연
- 에스크로 등 안전장치 필요 제기
2026-05-0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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