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왜 쉼터 대신 ‘공캉스’ 즐기나

노인들 왜 쉼터 대신 ‘공캉스’ 즐기나

홍인기 기자
입력 2019-08-21 23:04
수정 2019-08-22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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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아까워 집 에어컨 못 틀어…공항, 경로당·관공서보다 마음 편해”

무더위 쉼터 취약층 접근성과 ‘거리’
무료 공연 등 노인들 흡수 가능하게 기존시설을 새 휴식처로 전환 필요
지난 20일 더위를 피해 서울 김포공항 청사를 찾은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공항을 찾은 노인들은 주로 TV나 휴대전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지난 20일 더위를 피해 서울 김포공항 청사를 찾은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공항을 찾은 노인들은 주로 TV나 휴대전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더위가 다시 시작된 지난 20일, 김포공항 4층 대형TV 앞 의자 24개 중 20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식당이나 상점이 없고, 출국 수속을 밟는 곳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야 하는 이곳은 탑승객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다. 이른바 ‘공캉스’(공항+바캉스)를 즐기러 온 노인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노인네들은 혼자 있으면 전기요금 아까워서 에어컨 못 틀어요.”

TV가 잘 보이는 명당에 자리잡은 신모(76) 할머니는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지하철을 이용해 공항으로 왔다. 신 할머니는 “동네 경로당에는 이미 다른 노인들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도 관공서 직원들이 눈치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공항만큼 편하지 않다”며 “커피 마실 것도 아닌데 카페에 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서울의 낮 기온은 33도로 습한 더위가 이어졌지만, 공항의 실내온도는 26도로 유지됐다.

공항 등을 찾은 노인들의 가장 큰 목적은 더위를 식히는 것이다. 에어컨은 있지만 전기요금 걱정에 마음껏 틀지 못하거나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야 하기 때문이다. 폭염특보가 내려졌던 지난 13일 김포공항에서 만난 강재구(72) 할아버지는 “에어컨이 고장 났지만 수리비가 걱정돼 지금껏 버티고 있다”며 “공항은 사람 구경도 하고 더위도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시청사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인들의 모습.
지난 20일 서울시청사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인들의 모습.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무더위 쉼터는 4만 7910개에 달한다. 하지만 무더위 쉼터가 취약계층의 접근성, 실질적인 활용성보다는 숫자 늘리기에 치중돼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항, 시청, 구청, 지하철역과 연결된 지하상가 등이 무더위를 피하는 명소가 된 이유기도 하다. 서울 시민청을 찾은 서창식(66) 할아버지도 “동네에 있는 무더위 쉼터에서는 고스톱이나 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텃세도 심해서 가고 싶지 않다”며 “이곳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데다 볼거리도 많아서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공항을 찾은 노인들은 대부분 조용히 TV나 휴대전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최근에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삼삼오오 무리지어 나들이를 오는 경우도 있다. 친구 세 명과 함께 올해 처음으로 공항을 찾았다는 정경자(85) 할머니는 “지하철 타고 나들이 삼아 왔다”며 “이만한 피서지가 또 있을까 싶다”고 했다.

노인들은 오후 5시쯤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모(74)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지하철이 붐비는 퇴근시간 전에 집으로 간다”고 전했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자리다툼이나 소음 등 노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더위 대책이라는 단편적인 접근이 아니라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며 “무료 공연이나 문화 프로그램으로 탑골공원에 있던 노인들을 흡수한 서울노인복지센터처럼 기존 시설을 새로운 휴식시설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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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9-08-2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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