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과 같은 위기” 경고 잇따라
NPT 때 핵보유국이 국제규범 주도
기술·협상력 갖춰야 AI 규범 참여
이번 주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인공지능(AI)이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마음이 복잡하다. AI 개발 선두 업체들이 주장하는 AI 속도조절론이 예상보다 빠르게 국제 규범으로 현실화한다면 한국의 AI 산업에는 악재가 될 수 있어서다.최근 오픈AI와 앤스로픽 수장이 AI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왔고 ‘AI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와 요슈야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가 AI를 핵에 비유하며 잇달아 경고음을 울렸다. 힌턴 교수는 오픈AI의 아스트라가 허깅페이스를 해킹한 사건을 “작은 체르노빌”이라며 “AI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시간이 1년쯤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벤지오 교수는 “AI 통제는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과제”라며 국제 규범 논의를 제안했다.
글로벌 핵군축·비핵화와 마찬가지로 AI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대의에 공감하지만 그 뒷면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핵무기 국제 규범을 핵보유국이 주도했던 것을 돌아보면, 우리가 AI 국제 규범 논의에서도 소외될 수 있어서다.
AI 국제 규범 모델로 거론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은 1967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핵무기 또는 핵폭발 장치를 제조·폭발시킨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 등 5개국만을 핵무기국으로 규정했다. 그날까지 핵을 갖지 못한 나라는 핵무기 개발이 금지됐다. 비핵보유국은 핵군축 약속의 불이행 우려, 강대국 중심의 국제 안보 질서 등을 우려해 반발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AI는 핵과 달리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 규제에 부정적이어서 NPT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AI 기술 경쟁에서 지배적 위치를 선점한 미중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AI 표준과 규범을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핵무기 규범 때처럼 기술 역량과 협상력을 가진 소수 국가가 규칙 설계 과정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지점이다.
이번 정상회담 만찬에는 오픈AI, 아마존, 엔비디아, 구글 등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AI 속도전에서 낙오했다간 규칙을 정하는 논의에서 배제되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우리도 국제 규범 논의에 참여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는 핵심 기술의 자립 역량이다. 민관은 소버린 AI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GPU·데이터·컴퓨팅 인프라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해외 모델 활용을 넘어 우리 언어와 산업, 공공서비스에 최적화된 AI를 자체적으로 개발·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국방 분야가 출발점이다. 국방 AI를 단순한 무기체계의 보조 기술로 취급하지 말고, 감시·정찰·지휘통제·사이버 방위 등 핵심 군사 시스템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로 구축해야 한다. 소버린 AI의 고도화가 AI 생태계에서 고립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제 협력에 참여하면서도 핵심 기술과 데이터, 시스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국제 협상력도 키울 수 있다.
다음은 협상력 고양이다. 우리 정부는 AI 규제 논의뿐 아니라 안보·통상·산업 분야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 협력 체계도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 국제 협의체는 처음부터 완성된 안보 질서로 출범하지 않는다. 작은 실무 협력이 새로운 전략적 연대와 규범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전략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는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당시 네 나라가 구호 활동을 위해 협력한 것이 초기 계기였다. 특히 미중 간 AI 안전과 군사적 위험에 대한 논의가 향후 새로운 다자 협력체나 규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AI라는 미래의 국제 규범을 누가 설계하고, 누가 그 과정에 참여할지는 기술 역량과 외교적 준비에 달려 있다. 선두권이 벽을 높이고 있고, 우리는 시간이 없다.
이경주 산업부장
이경주 산업부장
2026-09-2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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