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빨리’ 아닌 ‘어떻게’ 고민할 때

[데스크 시각] ‘빨리’ 아닌 ‘어떻게’ 고민할 때

임일영 기자
임일영 기자
입력 2026-09-17 00:17
수정 2026-09-1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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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정비사업 권한 이양 논란
공급확대 대 난개발 우려 ‘팽팽’
도시경쟁력, 아파트 물량과 무관

정비구역 지정 권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6·3 지방선거 때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500세대 이하 정비구역 지정 권한 이양’을 최근 정부·여당이 본격 추진하면서다. 그러자 서울시는 “정비사업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실효성 낮은 조치”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핵심은 서울시장이 가진 소규모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에 넘길지, 자치구가 처리할 수 있는 경미한 변경 범위를 현재의 ‘10% 이내’에서 ‘20% 미만’으로 확대할지다.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뭐길래 이럴까. 모든 재개발·재건축의 ‘시작’이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돼야 비로소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인가 등 후속 절차가 이어질 수 있다. 현행법은 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입안해 주민 공람과 구의회 의견 청취를 거친 뒤 시장에게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정비사업 관련 9개의 인허가 권한 중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 관리처분 등 7개는 구청장이 갖고 있지만 구역 지정을 위한 심의와 사업시행을 위한 통합심의라는, ‘현관 도어록’을 시에서 관리하는 격이다.

여권에선 서울의 주택 공급량을 늘리려면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야 하고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지역까지 시시콜콜 서울시의 심의·결정을 거치다 보니 절차가 늘어진다는 논리다. 흥미롭게도 민주당 소속 구청장만의 얘기는 아니다. 민선 8기 때 정비사업 현안이 걸려 있는 국민의힘 구청장 상당수는 내심 권한을 받아 오길 원했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무게 때문에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자치구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중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낡은 동네가 마천루로 바뀌고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는 표와 맞닿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기여다. 정비사업에서 용적률을 높이면 조합원은 더 많은 개발이익을 얻는 대신 그 일부를 도로나 공원, 공공시설 등의 형태로 내놓아야 한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자치구가 자체 예산으론 엄두 못 낼 시설을 민간 자본으로 짓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 정비사업이다. 건폐율·용적률 등 ‘경미한’ 변경 권한을 넘겨 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서울시는 정비사업을 할 때 행정 경계를 넘어서는 상하수도, 교통·이주 인프라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 터라 자치구 단위에서 결정하면 광역도시계획이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자치구는 조합 요구나 주민 갈등에 취약해 자칫 과밀 개발이나 사업 지연을 유발할 수 있고, 극단적으로 500가구 미만 기준에 맞추기 위한 ‘쪼개기’ 개발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다른 후보들이 정 후보의 공약에 대해 난개발과 자치구의 재정 부담 우려를 이유로 비판한 점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여권이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주택 공급뿐 아니라 오 시장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멀게는 2028년 총선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6·3 선거에서 정비사업과 중첩된 욕망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민주당의 전통적 우세지역에서 오 시장의 예상 밖 득표로 이어졌다는 분석과 맞물려서다. 지난달 고위당정에서 관련 내용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서울시를 패싱하고 시장의 인허가 권한 자체를 구청장들에게 넘기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둘러싼 논란과 지금 불거진 배경에는 ‘여 대 야’, ‘서울시 대 자치구’의 구도를 넘어선 복잡다단한 관계가 얽혀 있다. 정치공학적 접근이 아니라 서울의 미래와 도시개발 방향에 대한 숙의를 토대로 의사결정 체계의 효율화와 광역 도시계획이 공존할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한 까닭이다. 서울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빨리’가 능사는 아니어야 한다. 그보다는 도시 경쟁력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고민할 때다.

임일영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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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영 사회2부장
임일영 사회2부장
2026-09-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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