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年1000건 ‘미투 상담’···“성폭력 상담소 그만둡니다”

혼자 年1000건 ‘미투 상담’···“성폭력 상담소 그만둡니다”

김지예 기자
김지예 기자
입력 2019-02-25 22:38
수정 2019-02-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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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상담 4만 건 늘었는데 인력은 제자리

상담 건수 급증 육체적·정신적 소진
대리 외상 등에 사실상 무방비 방치
관련 시설 종사자 근속 겨우 3.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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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의 영향으로 상담 기관을 찾는 피해자들이 급증했지만 상담 인력은 지난 10년간 거의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과 피해자 지원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여성가족부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국의 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상담 건수는 2008년 14만여건에서 2017년 18만여건으로 약 25% 증가했다. 미투 운동이 촉발된 2018년은 상반기 상담만 10만건을 돌파해 19만 5000여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상담 인력과 상담소 수는 10년 전에 비해 거의 늘지 않았다. 2018년 상반기 기준 전국 170개 상담소의 상담사를 포함한 상근 인력은 597명으로 2008년 196개소 594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단순 계산하면 한 상담소당 연간 1000건의 상담을 맡는 셈이다. 전국의 상담소에는 소장 1명을 포함해 상담사 3~4명이 근무한다. 대도시 지역의 업무 부담은 더 크다. 서울의 한 성폭력상담소의 경우 지난해 상담 인력 3명이 총 3000번 이상 상담했다. 비수도권 지역들도 한 해 700~800건을 상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소 인력난의 가장 큰 원인은 예산 부족이다. 상담소 170곳 중 104곳은 상담사 3명에 대한 인건비와 운영비 일부를 국비 지원받고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한 곳당 국가 지원금은 1년에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7900만원(일반 상담소 기준, 장애인 상담소는 1억 1400만원)이다. 이는 상담소장을 포함한 상담사 3명에 대한 인건비와 운영비다. 국비 지원 대상이 아니거나 상담사가 더 필요해도 열악한 여건 때문에 고용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2019년 관련 예산은 일반 상담소 기준 2900만원이 늘어 오는 4월부터 상담사 1명을 추가 고용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상담사들은 육체적·정신적 소진을 호소한다. 서울의 한 성폭력 상담소에서 8년째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최모씨는 “상담 건수가 늘면 상담사의 육체적·정신적 소진이 커지고 상담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의도와 달리 피해자 지원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담사도 똑같이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미투 운동 이후 고소 등 법적 대응을 선택하는 피해자가 늘면서 상담부터 법적 지원까지 맡는 이들의 업무는 점점 늘고 있다. 최씨는 “피해자가 소송에서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2차 피해를 겪으면 사건에 깊이 개입하는 상담사들도 오롯이 그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상담사들의 대리 외상은 장기 근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6년차 상담사 A씨는 “상담 건수가 절대적으로 많아 소진이 매우 크지만 적절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며 “몸과 마음이 지쳐 2~3년 만에 떠나는 동료들이 많은데, 소진 예방을 위한 정책적 고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폭력방지시설 처우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폭력 상담소와 보호·생활시설을 포함한 전체 시설 종사자의 평균 재직 기간은 3.15년이었다. 연구원 조사 결과 피해자 지원기관 종사자들은 인건비 현실화 외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훈련 확대, 소진 예방 프로그램 제도화, 안식 휴가 등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범죄피해자기금으로 예산을 편성받다 보니 증액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올해 처음 역량 강화 예산을 편성받아 컨설팅과 워크숍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력 상담사 대부분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며 “늘어나는 피해자 지원을 감당하기 위해 처우 개선과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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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9-02-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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