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째 맞은 밀양 송전탑 공사…접점 못찾고 대립

보름째 맞은 밀양 송전탑 공사…접점 못찾고 대립

입력 2013-10-16 00:00
업데이트 2013-10-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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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강행 속 충돌·공사방해 사법처리 잇따라

한국전력공사가 재개한 경남 밀양지역 송전탑 공사가 16일로 보름째를 맞았다.

한전은 대규모 경찰력의 지원 아래 지난 2일 공사를 재개한 이후 굴착, 지하 원형보 강판 설치, 철근 조립 등 기초 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경찰에 둘러싸인 주민들 16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85·86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연결되는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농성을 하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한 뒤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날 경찰은 주민들이 공사 자재를 실은 한전 차량의 통행을 막는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연합뉴스
경찰에 둘러싸인 주민들
16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85·86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연결되는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농성을 하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한 뒤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날 경찰은 주민들이 공사 자재를 실은 한전 차량의 통행을 막는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연합뉴스
경찰은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30여 개 중대 3천여 명의 인원을 투입, 그 가운데 1~2천 명을 매일 교대로 배치하고 있다.

한전의 공사를 보호하려는 경찰과 공사를 저지하려는 주민 등은 대치와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22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환경운동가 1명이 구속됐다.

반대 주민의 대부분이 고령인 탓에 부상자도 속출했다.

경찰이 주민의 접근을 막으려고 송전탑 현장 진입로를 막으면서 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주민을 지원하는 외부 단체의 성격과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여론 조사 결과를 두고도 여론이 엇갈렸다.

한전과 반대 주민 측은 전자파의 건강 피해, 지중화 등 쟁점을 둘러싸고 이전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밀양 송전탑 갈등 사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 속도 내는 한전…공사현장 확대

한전은 지난 2일 송전탑 건설 예정지인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과 동화전마을, 상동면 도곡리, 부북면 위양리 등 5곳에서 공사를 재개했다.

이번 공사 재개는 2005년 8월 주민과의 갈등이 시작된 후 12번째다.

지난 14일에는 공사 현장을 단장면 2곳과 상동면 1곳 등 3곳 추가했다.

이로써 한전이 진행하는 송전탑 현장은 5곳에서 8곳으로 늘었다.

한전은 경계 울타리를 쳐 주민의 접근을 막은 뒤 지름 3~4m, 깊이 9~11m의 원통형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원형 둘레를 따라 강판과 철근을 설치하는 등 밤낮으로 공사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주로 헬기로 자재를 공수하다가 16일부터 차량을 이용한 수송을 시작했다.

한전은 이날 오전 경찰 600여 명의 엄호를 받아 철근 자재를 실은 화물차 등 차량 8대를 바드리마을의 송전탑 현장에 투입했다.

다음 공정에 필요한 콘크리트도 경찰의 보호를 받아 차량으로 옮길 예정이어서 이를 막으려는 반대 주민과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전은 신고리 원전 3호기 가동에 맞춰 내년 6월까지는 송전탑 공사를 끝내야만 올해 여름과 같은 전력 대란을 피할 수 있다며 공사에 더욱 속도를 낼 태세다.

주민의 거센 반대로 한전이 완공하지 못한 송전탑은 밀양시 4개 면에 걸쳐 52기가 있다.

이 송전탑들은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 구간에 설치되는 전체 송전탑(161기)의 32.3%에 이른다.

◇ 계속된 대치·충돌로 부상자·사법처리 잇따라

공사 재개 이후 보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경찰과 반대 주민 측이 송전탑 현장 주변 곳곳에서 대치하고 있다.

한전 직원과 공사 차량이 공사장을 오가는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충돌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지난 10일에는 상동면 도곡리 송전탑 공사현장 인근에서 조모(85·여)씨 등 3명이 현장 경비 업무를 위해 이동하는 경찰관들에게 가축 분뇨를 투척하기도 했다.

이런 충돌 등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지금까지 모두 32명의 주민이 응급차에 실려 갔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2명이 병원에 이송된 셈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69세였다.

타박상 등 가벼운 부상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고 곽빛나 대책위 간사는 덧붙였다.

한전의 공사 재개에 맞춰 검찰과 경찰 등 공안 당국은 공사방해 행위에 대한 엄벌 방침을 천명했고, 그 뒤로 사법처리가 잇따랐다.

경찰은 지금까지 주민과 환경단체 회원 등 모두 22명을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나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 조사했고 그 가운데 경북 경주환경운동연합 이모(39) 사무국장을 구속했다.

이 사무국장은 지난 3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송전탑 공사자재 야적장의 경계 울타리를 뜯어내고 들어가 자재 등 수송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 7일 구속됐다.

16일에도 50대 주민이 바드리마을 입구 도로에서 경찰 방호벽 사이로 트랙터를 몰고 통과하는 과정에서 의경 1명을 다치게 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한전이 반대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 주민 이모(71)씨 등 25명을 상대로 낸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사건을 두고 양측이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으나 법원은 결국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지난 8일 국가 전력 수급계획의 하나인 밀양 송전탑 공사의 중요성 등을 이유로 한전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지난 14일에는 송전탑 현장 등 35곳에 공사를 방해하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이 담긴 고시문을 붙였다.

◇대규모 공권력 투입에 인권 침해 논란

밀양에 투입된 대규모 경찰력이 반대 주민의 공사장 접근을 막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도 제기됐다.

반대 대책위는 경찰의 통제로 주민 통행이 제한되면서 각종 생활 불편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지난 4일 인권위에 긴급 구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 9일 긴급구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인권위는 인권 침해의 개연성, 회복 불가능한 피해 예상 등 긴급 구제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국내외 인권단체의 비판이 잇따랐다.

국제인권연맹, 아시아인권위원회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최근 밀양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정부에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보장, 주민과의 대화를 촉구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9개 단체도 공동성명을 내고 “인권단체의 거듭된 경고에도 인권위는 정치적 판단으로 밀양 주민들의 인권을 묻어버렸다”고 비판했다.

◇ ‘외부 세력’· 정반대 여론조사 결과 논란

송전탑 반대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외부에서 온 시민·사회단체 등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도 거셌다.

밀양사회봉사단체 협의회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송전탑 반대 주민을 지원하는 외부 세력은 주민들을 선동, 밀양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연로한 어르신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외부 세력은 당장 밀양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외부 세력은 무조건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밀양의 미래를 짓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엄용수 밀양시장도 이에 앞서 지난 8일 같은 취지의 성명을 잇달아 냈다.

홍 지사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외부세력은 당장 추방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엄 시장은 “송전탑 현장은 이념투쟁의 장이 아니다”며 송전탑과 관련해 외부단체의 간섭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반대 대책위는 “반대 주민을 지원하는 외부 단체는 국가 폭력에 막다른 곳으로 내몰린 주민들을 외면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연대한 우리 사회의 양심 세력”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일부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한 왜곡보도가 밀양 송전탑 문제를 본질과 다르게 이념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전과 환경단체가 벌인 여론조사 결과도 정반대로 송전탑 논란을 증폭시켰다.

한전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3∼4일 이틀간 밀양을 포함한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는 송전탑 공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9.6%, 반대는 22.5%로 나왔다.

밀양시 주민도 찬성 비율이 50.7%로 반대(30.9%)보다 높았다.

반면에 환경운동연합과 환경보건시민센터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66.1%가 건강과 재산피해를 이유로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의 우려를 ‘일리 있다’고 답했다.

’근거 없는 반대’라는 응답은 17.6%에 불과했다.

’밀양과 같이 집 근처에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반대한다’는 응답이 53.9%로 ‘찬성한다’(19.1%)보다 34.8% 포인트 높았다.

◇ 지중화 등 쟁점 놓고 접점 없이 대립

전자파 피해와 지중화 여부 등 송전탑 관련 쟁점을 바라보는 반대 주민과 한전의 견해차도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반대 주민들은 암 발생 증가, 지속적인 소음으로 말미암은 두통과 스트레스, 가축 유산 등 전국 다릉 지역의 피해 사례를 들어 송전탑 대신에 지중화하거나 전압을 낮춰 기존 송전탑으로 우회 송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는 5천700여억원을 투입해 3~4년 내에 지중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TV토론을 열어 양측의 주장에 대해 국민의 판단을 받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전은 송전선로 주변에서 암 환자와 가축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7년에 12년간(1996~2007년) 연구 결과를 기초로 “전자파 노출에 의해 암이 진전된다는 생체작용은 밝혀진 바 없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전자파에 민감한 꿀벌도 송전탑에 집을 짓고 서식하는 모습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또 지중화를 위한 절연체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세계적으로 이 부분의 지중화 기술이 실용화된 곳은 아직 없으며, 설령 지중화가 가능하더라도 공사하는 데 12년 걸릴 뿐만 아니라 사업비도 2조7천억원이나 든다며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책위의 TV토론 제안에도 그동안 충분한 논의와 전문가 검토를 거쳤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로선 양측이 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신고리 원전 준공 전에 송전선로 건설을 마치려는 한전과 결사저지하려는 주민 간 충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송전탑 갈등을 바라보는 밀양지역의 여론도 갈라져 있다.

송전탑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주민들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고 이에 공감하는 시민이 있는 한편에서는 심각한 전력난을 해결하고 대다수 국민을 위한 국책사업인 만큼 반대 주민들도 이제는 원만한 타결에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밀양을 제외한 다른 구간 송전탑이 이미 세워진 터여서 다른 지역 주민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지 원칙을 갖고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면서 “지역 사회 여론 주도층의 도움을 받아 합리적 보상을 해줘야 갈등의 장기화를 막을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송 교수는 “정부는 과학적인 접근과 협상력을 통해 실질적으로 (송전탑이) 사람들에게 위험하면 이주를 시키든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 부담이 커지게 되고, 이는 정부의 능력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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