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1) 철원평야의 맥박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1) 철원평야의 맥박

입력 2004-08-10 00:00
수정 2004-08-1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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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평야는 강원도 북서부 지역을 남북으로 40㎞,동서로 15㎞나 뻗은 강원도 제1의 곡창지대다.가을철,드넓은 지역을 기계로 추수하다 보니 곡물이 많이 떨어지는 데다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샘통에서 흘러내리는 물 등은 철새들에게 더없는 먹을거리와 쉼터를 제공한다.이를테면 철원평야는 사람도,새도 넉넉히 먹여 살리는 ‘생명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새 250여종 사철 날아들어

“괘륵∼ 괘륵∼ 괘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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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갈말읍 민간인 통제선 검문 초소로 향하는 길가는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미확인 지뢰지대가 삼엄하게 펼쳐져 있다.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지만 빽빽이 들어선 아까시나무 숲은 백로와 왜가리 등 여름철새로 그득하다.새끼들은 귀청이 얼얼한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대고,어미들은 날개를 푸덕이며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등 연신 부산하게 움직인다.

녀석들이 일제히 울어대는 통에 수미터 떨어진 동료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육군 ○○사단 정훈공보참모 신민호 중령은 “지뢰 매설지역 안쪽이라 사람들이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기 새들은 모두 기세가 등등하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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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평야의 여러 풍경은 사람과 동물의 진정한 상생(相生)이 가능한 것인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미확인 지뢰지대 안,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똘망똘망한 눈동자의 새끼들을 지긋이 굽어보는 어미 백로의 표정이 평화롭기만 하다.
 철원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철원평야의 여러 풍경은 사람과 동물의 진정한 상생(相生)이 가능한 것인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미확인 지뢰지대 안,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똘망똘망한 눈동자의 새끼들을 지긋이 굽어보는 어미 백로의 표정이 평화롭기만 하다.
철원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철원평야는 사시사철 철새들로 가득한 이른바 ‘철새들의 낙원’이다.10월쯤 백로 등 여름철새들이 날아가기가 무섭게 두루미·재두루미 등 겨울철새들이 이곳을 제일 먼저 찾아온다.두루미류 1000여마리와 흰꼬리수리 등 독수리류 300여마리,기러기류 10만여마리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이뿐 아니다.수리부엉이 등 올빼미류와 새매를 비롯한 매류,중대백로 등 백로류 등도 있다.

철원평야는 ‘여름손님’ 100여종,‘겨울손님’ 140여종이 찾아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다.이 가운데 두루미,재두루미,흑두루미,큰덤불해오라기,알락해오라기,수리부엉이,올빼미,쇠부엉이,칡부엉이,독수리,흰꼬리수리,황조롱이,큰고니 등 수십여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거나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보호야생종들로 보호받고 있는 희귀조들이다.물까치 등 흔한 텃새들까지 합하면 철원평야에 서식하고 있는 새들은 수백종에 달한다.

새들이 철원평야를 가득 메우는 이유는 사람들의 배려도 한몫한다.이곳 농민들은 추수 뒤 논을 갈아 엎지 않는데,철새들이 낙곡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철원평야는 이렇듯 사람과 새들이 서로 정을 나누며 공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철새 내쫓는 무분별 탐조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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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 인파가 몰려드는 고석정(사진 위)과…
물놀이 인파가 몰려드는 고석정(사진 위)과… 물놀이 인파가 몰려드는 고석정(사진 위)과 낚시꾼들로 붐비는 학저수지는 새들이 외면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철원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하지만 최근 들어 새들의 평화로운 안식처가 조금씩 파괴되는 조짐도 나타난다.이 지역 환경보호단체들은 “지방자치단체의 근시안적인 개발정책이 철새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개발·보존 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한해 5만여명이 다녀가는 ‘철새탐조관광’이 비판의 주요 대상이다.한국조류협회 김수호 철원지회 사무국장은 “제대로 된 가이드조차 채용하지 않는 데다 아무 때고 관광객들을 몰고 다니는 등 섣부른 생태관광이 철새들을 철원평야에서 쫓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새들의 수난도 갈수록 늘고 있다.한국조류협회가 지난해 철원평야에서 구조한 야생조류는 300여마리로,해마다 수가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새들이 먹잇감을 찾곤 하는 수로 등을 모조리 콘트리트로 발라 버리는 바람에 먹이를 쉬 잡아먹지 못하는 데다 큰 새와 야생동물들이 수로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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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새가 있고 나서야 관광이나,개발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관광객 등쌀에 철새들이 떠나는 일이 있어선 안 되지요.마구잡이식 생태관광으로 관광수입을 올리는 것보다 철원평야에 얼마나 많은 종의 철새들이 어떻게 서식하고 있는지 등 서식환경을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보전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김수호 사무국장의 이같은 경고는 철원평야 민통선 지역 내에 있는 학저수지의 사례로 볼 때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철원군 여름철새의 최대 도래지였던 학저수지를 1990년대 중반 개인낚시터로 임대해 준 이후부터 철새 서식지가 대거 파괴되면서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고 한다.

철원군에서 상처 입은 야생조수를 치료하며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수의사 김이수씨는 “근시안적인 개발정책이 후대에 물려줘야 할 인류의 보물을 파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철원자연생태학습원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수년째 자연보호 프로그램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정미황(40)씨의 말은 그래서 새겨들을 만하다.“현재와 같은 인간중심 일변도의 접근방식을 우선 바꿔야 합니다.대상자인 새,즉 환경보호에 기반한 사고와 고민이 없다면 결국 야생동물은 물론 우리 인간들도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 그동안 자연이 가르쳐 준 이치입니다.”

철원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전문가 칼럼

철원평야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DMZ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DMZ의 동쪽은 산악지대요,서쪽은 평야지대인데 그 중간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성격을 지닌다.그렇지만 철원평야는 이렇게 어정쩡한 성격과는 다르다.주변이 금학산(947m),명성산(923m),오성산(1062m)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내륙평야로 인정받을 만큼 평야로서의 성격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다.이런 조건은 자연적으로도 독특하지만,평야로서 농경과 어울린다는 점에서 더 독특한 생태적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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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보통 자연상태에서만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구상의 생물다양성이나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도 농경문화와 함께 보존돼 온 예가 많다.우리가 들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은 대부분 농경문화가 부양해온 것이다.국가가 그 중요성을 인정해 각각 천연기념물 202호와 203호로 지정한 철원평야의 두루미와 재두루미도 현대적 농경문화가 불러들인 것이다.

물론 철원평야에 겨울철새가 날아오는 것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통이 먹을 물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철원평야에 먹이가 많다는 점이다.철원평야의 민통선 이북 지역에서는 기계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낙곡량(곡식을 회수할 때 땅에 떨어져 두고 오는 곡물의 양)이 많다.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이것들을 먹고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토교저수지나 산명호도 생물다양성에 중요한 서식처이다.넓은 둑은 독수리를 불러들이기도 한다.이처럼 자연물이 아닌 토교저수지나 산명호가 철원평야의 생태계를 부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최근에는 관광객을 위한 도로 때문에 두루미들이 철원평야에서 쉬지 못하고 DMZ로 날아가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었다.철새 정책이 철새를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인위적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자연과 얼마나 친해지고 어떻게 소통해야하는가라는 문제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

최근에는 농민과 철새 간에도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있다.철새가 많이 와서 당국이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 하자 화가 난 농민들이 샘통 주변을 갈아엎기도 하고,농지를 미리 객토해 철새들의 먹이를 땅 속에 파묻기도 하였다.인간의 삶터가 위협당할 지경이니 그 사정이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DMZ는 남북의 소통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인간과 자연간의 소통문제도 해결해야 할 국면에 와 있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2004-08-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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