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역시 미국, 캐나다에서 포닥으로 있던 시절, 가을이 되면 틈틈이 채용 공고를 찾아보곤 했다. 미국의 경우 각 주의 대학 한 곳만 지원한다 하더라도 50개 대학에 원서를 쓰는 꼴이 된다. 수십 개의 공고를 확인하고 자기소개서, 이력서, 연구계획서 등을 빠뜨리지 않고 마감을 지켜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 적어도 세 장의 추천서도 요구한다. 추천서는 피추천자가 내용을 보면 안 되므로 추천자가 직접 대학이나 연구소로 보내야 하는 만큼 수십 개의 추천서를 작성해 송부까지 해 달라고 부탁하는 상황도 몹시 곤혹스럽다.
해외에서는 지원자들의 이런 수고를 획기적으로 줄여 주는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했다. 미국 듀크대 수학과의 유윤량 박사가 만든 ‘매스잡스’라는 웹사이트다. 2001년 미국수학회가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매스잡스는 수학계의 대표적인 구인구직 사이트가 됐다. 이 사이트는 채용 공고가 올라오는 것은 물론 이력서와 연구계획서 등을 미리 올려두고 클릭만 하면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 같은 내용의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추천서조차 여러 곳에 한번에 발송할 수 있게 해 편의도 높였다.
채용기관 입장에서는 매스잡스를 사용하면 지원자들의 목록을 쉽게 정리할 수 있고, 추가로 비용만 지불하면 온라인에서 평가까지 할 수 있어 시간이 절약된다. 수학자들의 소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뺏도록 돕는 서비스에 투자하고, 적극 활용하는 미국 학계의 합리성이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엄상일 기초과학연구원 수리·계산과학연구단장
미국 수학계의 사례처럼 한국도 연구자를 뽑을 때 평가에 필요한 최소한의 서류만 요구한다면 어떨까. 수많은 곳에 지원해야 할 지원자를 배려해 기관별로 별도의 지원서 양식을 제공하는 일도 없어지면 좋겠다. 해외처럼 그저 자유롭게 작성하도록 두면 충분하다. 모든 지원자들의 시간을 뺏는 대신 뽑힌 사람에게만 필요한 서류를 더 받아서 검증하면 충분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나 카이스트 수리과학과는 이미 해외에 지원하는 것과 차이가 없는 과정을 통해 우수한 수학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방향성 때문에 연구직 채용에 국제 표준과 거리가 먼 방식으로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원자들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더 우수한 연구자들을 채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20-01-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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