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가?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지방시대]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가?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입력 2007-08-21 00:00
수정 200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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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뒤풀이 모임을 가졌다. 늦게 끝나 전주행 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지만 나의 장래가 걸린 문제를 상담하다 보니 고속버스 막차를 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걱정이 되어 여러 곳에 차편을 알아보게 되었다.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철도 회원권을 가지고 있어 전화를 넣었다. 기계음이었지만 친절한 여성의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철도고객센터입니다.”하더니, 이어 “지금은 모든 상담 전화가 통화 중이어서 연결해드릴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라며,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경우 통화 요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밤 11시40분을 넘어선지라 다른 교통편은 없을 것이고, 상담 전화가 많다는 것은 기차편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하였다.

세 번 정도 위의 상황이 계속되니 친절한 안내고 뭐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전화를 하자,“상담원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음과 함께 경쾌한 음악이 전달되었다. 슬슬 올라오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편이 있을까 하고 묻기 위해 목청까지 가다듬으며 귀를 수화기에 바짝 대고 있는데,“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며 기대를 저버렸다.

다시 통화 단추를 눌렀다. 이번에는 제법 비장한 어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KTX와 함께하는 철도고객센터입니다. 상담원 상담 시간은 매일 오전 06시부터 밤 12시까지입니다. 자동응답 ARS를 원하시면 *표를 눌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였다.20여분을 통화 중이더니 밤 12시가 넘자 상담원 상담시간이 끝나버린 것이다.

오기도 생기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통화 단추를 누르고 시키는 대로 계속 눌러 보았다.

예약은 몇 번으로 해라, 출발역을 가·나·다 순으로 눌러라, 도착역을 가·나·다 순으로 눌러라, 차표 시간은 언제 필요하냐. 기계음의 요구대로 하다가 틀려서 다시 시작하고, 못 들어서 다시 시작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들려온 최종 목소리는 전주까지 가는 기차는 오전 7시까지 없다는 대답이었다. 한 시간의 씨름 끝에 나온 대답치고는 너무 간단명료했다.

죄없는 전화기만 던져졌다. 아침 7시 조찬 모임에 맞추기 위해 술 한 잔을 더하다가 새벽 3시쯤 내 생애 가장 비싼 택시요금 15만원을 내고 전주에 돌아왔다.

철도역에 가보면 표파는 곳이 표사는 곳으로, 표받는 곳이 표내는 곳으로 바뀌어 있다.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즉 소비자를 중심으로 안내판이 바뀌었다는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자동응답 안내로 인해 불편을 느끼고 난 뒤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 것은 허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안내는 철도공사뿐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관이 그렇게 하고 있다. 따라서 철도고객센터를 예로 든 것뿐이지 철도공사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인력을 줄여 예산을 절감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불편해도 이용할 사람은 이용할 것이라는 배짱도 있을 것이다.

조금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책 결정권자는 차표를 구입하거나 이용할 때 이런 불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보자. 기계음에서 사람으로 바꾸어 안내하면 고용 창출에 기여할 것이고 소비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 측면에서도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지 공론화해 보자.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2007-08-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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