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이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막을 내린 지도 한달 가까이 된다.아테네는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이자 근대 올림픽이 부활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민주주의가 탄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그러나 아테네에도 불명예스러운 오점이 하나 있다.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의 시민은 소크라테스라는 한 철학자를 재판에 회부,배심원 510명의 평결로 사형을 선고했다.예수의 재판,갈릴레오의 재판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가지 재판중의 하나인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아테네 시민들이 어떻게 70세나 되는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리는 극단적인 판결을 내렸을까?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재판에 회부한 아테네의 시민에 대하여 어떤 반론을 했을까? 언뜻 보기에 아주 간단한 질문이지만 2400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전쟁에 관한 책으로 잘 알려진 아이 에프 스톤은 작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악화된 70세에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조사하여 소크라테스 재판의 진실에 대한 취재를 했다.2차대전 이후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냉전시대와 베트남전쟁 등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온 스톤이 저널리스트로서 역사적 사실을 취재한 마지막 ‘특종’인 셈이다.
많지 않은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통해 스톤이 발견한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도 않고,제자인 플라톤이 스승의 죽음에 대해 기술한 내용 역시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신봉한 진보적 언론인인 스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소크라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아테네 시민의 평결은 곤혹스러운 주제였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조를 자처하는 아테네에서 어떻게 저명한 지식인을 사상적 이유로 유죄판결하여 사형까지 하는 일이 있었는가? 소크라테스는 왜 민주주의적 제도를 가진 아테네 대신 아테네에 대항하는 스파르타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는가? 아테네 시민의 판결이나 소크라테스의 정치적 선택은 모두 스톤이 평생 가졌던 민주주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지만 스톤은 책임있는 저널리스트로서 많지 않은 역사적 자료를 통하여 사실을 복원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재판의 진실이나 이것을 밝히려는 스톤의 노력은 국가보안법과 과거사 문제가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역사적 진실은 피상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더 복잡하고 중층적인 경우도 있으며 부분적인 사실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일부분만을 전달할 우려가 있다.진실은 정확한 사실을 기초로 하는 것이지만 사실의 단순한 합산이 반드시 진실에 이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 가운데에서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한 강연회에서 사회자가 스톤을 ‘탐사보도 전문기자’라고 소개하자 스톤은 “모든 저널리스트는 탐사보도를 한다.나는 기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스톤은 자신의 취재대상이 비록 자신의 신념과 거리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테네의 시민들과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둘러싼 사실과 진실을 취재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뤄야 하는 언론의 경우 개개인의 신념을 성급히 주창하기 이전에 사실과 진실을 온전하게 밝히려는 노력이 더 우선이라고 본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장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아테네 시민들이 어떻게 70세나 되는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리는 극단적인 판결을 내렸을까?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재판에 회부한 아테네의 시민에 대하여 어떤 반론을 했을까? 언뜻 보기에 아주 간단한 질문이지만 2400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전쟁에 관한 책으로 잘 알려진 아이 에프 스톤은 작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악화된 70세에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조사하여 소크라테스 재판의 진실에 대한 취재를 했다.2차대전 이후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냉전시대와 베트남전쟁 등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온 스톤이 저널리스트로서 역사적 사실을 취재한 마지막 ‘특종’인 셈이다.
많지 않은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통해 스톤이 발견한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도 않고,제자인 플라톤이 스승의 죽음에 대해 기술한 내용 역시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신봉한 진보적 언론인인 스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소크라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아테네 시민의 평결은 곤혹스러운 주제였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조를 자처하는 아테네에서 어떻게 저명한 지식인을 사상적 이유로 유죄판결하여 사형까지 하는 일이 있었는가? 소크라테스는 왜 민주주의적 제도를 가진 아테네 대신 아테네에 대항하는 스파르타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는가? 아테네 시민의 판결이나 소크라테스의 정치적 선택은 모두 스톤이 평생 가졌던 민주주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지만 스톤은 책임있는 저널리스트로서 많지 않은 역사적 자료를 통하여 사실을 복원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재판의 진실이나 이것을 밝히려는 스톤의 노력은 국가보안법과 과거사 문제가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역사적 진실은 피상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더 복잡하고 중층적인 경우도 있으며 부분적인 사실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일부분만을 전달할 우려가 있다.진실은 정확한 사실을 기초로 하는 것이지만 사실의 단순한 합산이 반드시 진실에 이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 가운데에서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한 강연회에서 사회자가 스톤을 ‘탐사보도 전문기자’라고 소개하자 스톤은 “모든 저널리스트는 탐사보도를 한다.나는 기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스톤은 자신의 취재대상이 비록 자신의 신념과 거리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테네의 시민들과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둘러싼 사실과 진실을 취재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뤄야 하는 언론의 경우 개개인의 신념을 성급히 주창하기 이전에 사실과 진실을 온전하게 밝히려는 노력이 더 우선이라고 본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장
2004-09-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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