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최후의 증인’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 별세

‘근대사 최후의 증인’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 별세

입력 2015-03-22 22:34
수정 2015-03-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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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상 전 장관, 향년 101세 일기로 별세
송인상 전 장관, 향년 101세 일기로 별세 재무부 장관과 초대 한국수출입은행장을 지낸 송인상 효성그룹 고문이 별세한 23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근대사 최후의 증인’ 송인상 한국능률협회(KMA) 명예회장이 22일 오후 2시 50분 별세했다. 향년 101세.

고인은 1950년대 산업의 태동기에 경제관료로 경제개발 정책 수립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이후 70년대 외교관으로 수출드라이브의 최일선에서 활약했으며 80∼90년대는 기업인, 경제단체 수장으로 재계를 이끌었다.

그는 이승만 정부의 마지막 각료 12명 가운데 지금까지 생존한 마지막 인물이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2012년 발간한 평전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에서 송 명예회장을 “이 나라 근대사 최후의 증인”이라고 묘사했다.

송 명예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 밑에서 한국의 경제정책과 행정제도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6·25 전쟁으로 초토화된 이 땅에서 ‘부흥과 성장’의 기수 역할을 수행했다”고 송 명예회장을 기억했다.

송 명예회장은 1957년 부흥부(전 경제기획원) 장관과 1959년 재무부 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의 수장으로 지내며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애초 그는 인도처럼 정부 주도의 5개년 개발 계획이 필요하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기간이 너무 길다는 대통령 판단에 따라 3년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4·19 혁명이 터져 빛을 발하지 못하고,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원도 회양 출신의 송 명예회장은 선린상업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대 상대 전신)를 졸업했다.

졸업 후 아버지의 바람대로 오늘날의 산업은행인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갔다. 당시 한국인 신입행원을 단 한 명 뽑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1949년 재무부 이재국장을 맡아 경제관료로 변신했다. 한국의 최초 경제정책인 ‘경제안정 15원칙’을 세웠다.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100억원 가까운 규모의 국채를 최초로 발행했으며, 한국은행도 탄생시켰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하는 성과를 냈다.

1957년 부흥부 장관 겸 경제조정관을 맡아 농업이 아닌 공업에 투자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했다. 충주 비료공장과 수력발전소, 디젤기관차 도입 등이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1959년 재무부 장관 자리에 올라, 건국 이래 처음으로 흑자재정을 달성했다. 공무원을 공개채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송 명예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원조 당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옛 중앙청)을 정부청사로 쓸 수 없다고 하자, 송 명예회장은 돈도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광화문 세종로에 쌍둥이 청사를 지어 하나씩 사용하자고 원조 당국에 제안해 문제를 해결한 일화가 있다. 이 건물이 바로 현재 미 대사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4·19 혁명으로 송 명예회장도 1960∼1963년 옥살이를 해야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소한 송 명예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경제정책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1974년 회갑의 나이에 EC(European Community)대사에 임명돼 부임 인사차 청와대를 찾았을 때 당시 박 대통령이 “수출을 10억 달러대로 올려놔달라”고 해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렸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결국, 2년 반의 대사 재임기간에 유럽 수출실적을 3억 달러대에서 10억 달러로 3배 이상으로 늘려 ‘기적의 대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박 대통령은 그를 1976년 초대 수출입은행장에 임명했다.

이후 송 명예회장은 민간부문에서 동양나이론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장 등을 거쳤으며, 20여년간 한국능률협회를 이끌며 올바른 기업인상 전파에 힘썼다.

기업인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사돈인 조홍제 효성그룹 선대회장의 부탁이었다. 경영참여 요청은 수출입은행 설립 때부터 있었으나, 매번 고사해오다 사돈의 건강이 나빠지자 1980년 그 뜻을 받아들였다.

고인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웠으며 남덕우 전 총리, 유창순 전 총리, 홍진기 법무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와도 우정을 나눠왔다.

송 명예회장은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1991년에는 한미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수교훈장 광화장과 2004년 한미협회 한미우호상을 받았으며, 국제 평화 증진에 힘쓴 공적을 인정받아 2007년 국제로타리 최고영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동진(사업가)씨와 딸 원자·길자·광자·진주씨가 있으며, 상공부 장관을 지낸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 고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주관엽(사업가)씨가 사위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02-2227-7550)이며, 영결식은 25일 오전 6시 30분 열린다. 장지는 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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