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평] 강제동원 3자 변제와 바람직한 후속 조치/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강제동원 3자 변제와 바람직한 후속 조치/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3-03-23 00:54
수정 2023-03-2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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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하자, 법리로 따지고
변제 대상과 범위는 최소화할 것
역대 정부의 보상 선례 알리고
한일 공동 조사로 인식차 좁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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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부는 지난 6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정부 산하의 일제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고(일본 기업)를 대신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원고(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이 해법은 지난 정부가 방치해 온 판결금 미지급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10년간 악화된 한일 관계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선해 안보·경제의 국익을 증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고육지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여러 자리에서 이런 결의를 명백히 표명했다.

그런데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이 결실을 맺어 한일 관계가 기대하는 수준만큼 진화할지는 불투명하다. 여론의 70% 이상은 한일 관계 개선을 찬성하지만, 60%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반대한다. 일부 피해자들은 변제금 수령을 거부하고, 야당 진영은 이를 반정부 투쟁의 호재로 삼는다. 그렇다고 정부가 만천하에 공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을 철회하면 한국의 대외신용도와 대일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질 것이다. 그런 우려에서 몇 가지 후속 조치를 제안한다.

첫째,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짊어져야 할 법률적 위험 부담을 최소화한다. 국제 판례로 보면 대법원 판결에 하자가 없는 게 아니다. 그렇더라도 대법원 판결은 다른 재판이나 입법을 통해 시정하는 것이 순리다. 정부가 헌법질서를 위반한다는 비난을 잠재울 수 있는 타당한 법리를 구성해 제시하면 좋겠다.

둘째, 윤 대통령이 왜 제3자 변제 방식을 택했는지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 정략적으로 보면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게 득책이다. 이로 인한 국익의 손상은 원인을 제공한 전 정부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역사 정의를 실현했다고 생색내며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과 국익 증대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전 정부의 덤터기를 뒤집어썼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비장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국민에게 직접 피력하고 지지를 호소하기 바란다.

셋째, 제3자 변제 방식의 대상과 범위를 최소로 줄인다. 정부는 계류 중인 강제동원 소송에서 승소하는 원고나 기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듯하다. 이렇게 하면 제3자 변제 방식의 초점이 흐려지고 강제동원 문제는 끝없이 확장돼 해결은커녕 분쟁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제3자 변제 방식은 확정판결을 받은 15명에 국한하는 게 좋다. 그 밖의 강제동원 문제는 재판을 지켜보며 별도의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한다.

넷째, 역대 정부가 강제동원 등의 보상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를 자세히 조사·정리해 공표하기 바란다. 정부는 몇 차례 법률을 제정해 1975∼1977년 92억원(무상 청구권자금 3억 달러의 9.7%)을 8만 3500건에, 2005∼2015년 6500억원을 7만 8000명에게 지급했다. 그런데도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아무 보상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이 보상 내력을 숙지하면 좀더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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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강제동원 등 과거사의 해결에 역사적 수법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빚은 분란에서 보듯 한국과 일본이 70년 동안 씨름해 온 역사 문제를 재판을 통해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한국이 제3자 변제 방식을 공표한 순간에도 일본은 강제동원의 사실을 부인했다. 이처럼 한일의 역사 인식은 다르다. 따라서 강제동원 등 역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일이 함께 조사·연구하고 그 결과를 공유·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인식을 일치시킬 수는 없어도 차이를 좁힐 수는 있다. 아울러 내셔널리즘의 충돌을 완화하는 쿠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2023-03-2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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