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9] 탁영금,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가치있는 현악기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9] 탁영금,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가치있는 현악기

입력 2015-08-24 11:34
수정 2015-08-2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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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의 대표적인 희생자인 탁영 김일손이 남긴 거문고 탁영금.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무오사화의 대표적인 희생자인 탁영 김일손이 남긴 거문고 탁영금.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거문고는 친숙한 악기처럼 느껴지지만, 이름만 친숙할 뿐 실제로 거문고 음악과 가까워지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연주하는 악기라기보다는, 스스로 성정을 다스리는 선비의 분신이라는 악기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거문고는 명주실로 꼰 여섯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다. 가야금처럼 그저 손가락으로 뜯어서는 제대로 소리조차 낼 수 없다. 술대로 힘차게 내리쳐야 특유의 깊이 있는 소리가 울려나온다. 현악기이지만, 음색은 그래서 타악기적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는 보물로 지정된 탁영금(濯纓琴)이다. 무오사화의 대표적인 희생자인 탁영 김일손(1464∼1498)이 타던 것이다. 그의 후손이 간직하다가 1997년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탁영금을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1월 11일까지 여는 특별전시 ‘국악,박물관에 깃들다’에서 볼 수 있다.

 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1498) 신진사류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 화를 입은 사건이다. 춘추관 사관이던 김일손이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는 것은 국사교과서에도 등장한다.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 즉 의제를 추모하는‘조의제문’은 단종을 의제에 비유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김일손은 기개있는 선비의 대명사지만, 거문고를 만든 과정은 풍류의 극치라고 해도 좋다. 탁영은 자신이 탈 거문고를 직접 구한 나무로 만들고 싶어했다다. 어느날 한 노파의 집에서 백년 가까이 되었다는 문짝 하나를 얻었다. 다른 한짝은 이미 땔감이 되었다. 남은 문짝으로 만든 거문고가 바로 탁영금이다. 지금도 탁영금의 밑바닥에는 문으로 쓰이던 때의 못 구멍 세 개가 그대로 남아있다.

 탁영금은 음악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악기이지만, 역사에 구체적인 흔적을 뚜렷이 남긴 젊은 선비의 기개가 담긴 정신적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가장 훌륭한 바이올린을 남겼다는 이탈리아의 현악기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의 걸작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졌고, 그것들이 범접하지 못할 스토리를 담고 있는 현악기를 바로 우리가 갖고 있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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