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메카 대학로에 ‘연극박물관’ 짓습니다”
대학로에 연극박물관이 들어선다.100여개의 극장이 난립해 있지만 번듯한 자료실 하나 없는 연극의 메카였다. 이 구상은 중앙대 연극학과 고승길(64) 교수의 머릿속에 30여년 전부터 들어 있던 것.5년 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149평 부지에 2층짜리 건물을 산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현재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이 움튼 곳이다.25억원의 사비를 털었다.
첫삽은 내년 2월에 뜬다.9월이면 ‘동양연극박물관’이라는 현판이 대학로에 내걸린다. 지상 5층, 지하 2층짜리 문화공간이다.“제 개인 연구실과 50평짜리 아파트를 팔 예정입니다. 가족들 반대요? 나보다도 집사람이 빨리 지어야 된다고 난리예요.”
40여년간 아시아 연극을 공부해온 고 교수. 새 박물관에 동양연극을 제대로 알릴 자료를 비축하고 활용·교육하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대학로에는 공연 행위만 있지 연구나 정보를 비축하려는 노력이 없어요. 돈 들여 국제적 규모의 연극제를 열어도 기본 정보가 없어 낭비가 많습니다. 요즘 한류라고도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주도를 못하고 있는 건 아시아 문화에 무지해서지요.”
한국 연극은 실크로드 때부터 동양 연극과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고구려의 아크로바틱과 인형극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 그런 맥락에서 그는 지금처럼 더이상 서양 연극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동양연극박물관’에는 지난 40년간 고 교수가 모아온 귀중한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일본, 중국, 터키, 이란, 인도, 태국, 티베트 등 아시아 전역을 돌며 구해온 ‘보물’들이다. 일본만 150여번 오갔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시골 노인의 보따리까지 뒤졌다. 한·중 수교 전에 서적이나 자료를 들여올 때는 공항에서 번번이 ‘불온문서 의혹’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모은 3만권의 서적과 1만여점의 논문, 포스터와 프로그램, 비디오 테이프,CD,DVD 4000여점 등이 모두 새 박물관에 소장된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해방 이전의 희곡을 비롯해 각종 가면과 인형극, 그림자연극 인형 500점도 함께 전시된다. 대학에 남길까도 했지만 국내 대학 박물관 중 변변히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없어 포기했다.
“일본 와세다대 연극박물관도 유명하지만 자국 것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서양, 중국 자료입니다. 동양 전체 연극을 주제로 아우르는 박물관은 최초가 아닐까요.”
‘동양연극박물관’은 극장 2개와 스튜디오, 전시실 2개, 자료보관실과 연구실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극장 이름도 정했다.‘미마지’.“미마지는 백제 시대 612년에 기악무(伎樂舞·불교적 교훈이 담긴 산대가면극 같은 것)라는 걸 일본에 전해준 한국 최초의 배우예요. 우리는 늘 뭐 한다 하면 그리스 얘기를 하길래 기분 나빠서 미마지로 정했지요.”(웃음)‘미마지’는 대학로 연극쟁이들에게 싼 임대료로 내놓을 생각이다.
문제는 지원이다. 모두 1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갈 공사지만 고 교수는 개인돈 25억원 외에 외부의 도움은 구하지 않은 상태.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박물관 일대의 문화지구 지정이다. 현재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주변에는 게릴라 극장과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동숭무대와 현재 공사 중인 선돌극장 등 5개의 소극장이 들어서 있지만 문화지구에서 벗어나 있다. 용적률 혜택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런 주변머리가 없어요. 만들고 나면 이 사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겠죠. 제가 중앙대에서 35년을 가르친 사람인데 제자들만 해도 유명한 탤런트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저는 평소에 신세 안 지는 사람으로 되어 있어서….”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7-10-2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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