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깨끗한 대선 ‘국민 사기극’

[열린세상] 깨끗한 대선 ‘국민 사기극’

육동일 기자 기자
입력 2003-11-03 00:00
수정 2003-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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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SK비자금이 정치권에 유입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적은 비용으로 깨끗하게 치러져서 한국정치의 진일보를 내딛는 선거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바 있다.그러나 잇따라 터진 불법 정치자금관련 사건으로 그 평가는 무색해졌고,오히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가중시켰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늘상 그래왔듯이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초래하고,그 결과 정치에 식상한 국민들을 선거판에 끌어들이기 위해 돈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켜 정치자금을 또다시 음성적으로 조성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한다.이제사 다급해진 각 정당 대표들은 긴급 회동을 통해 SK비자금 파문을 정치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이달 말까지 각 당이 정치개혁 방안을 만들고 다음달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짓자는 졸속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치개혁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인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지난 8월 정치자금을 관장하는 주무기관인 선관위는 선거운동의 자유를 대폭 확대하는 대신 선거비용의 통제를 강화하고,정치자금의 합법화를 추진하면서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또 부패방지위원회도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치자금제도개선 권고안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그러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개정안의 내용에 반대한다는 의견만 개인별로 제시했을 뿐 정치개혁안의 입법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독재자보다는 위원회를’‘시가전보다는 선거를’,그리고 ‘혁명재판소보다는 토론회를’ 선택하여 의회민주주의체제를 정립한 정치선진국가들은 선거제도의 민주주의화를 목표로 정치개혁을 추진해 왔다.

근대민주정치를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근 백년 이상 앞당긴 영국의 정치사도 혁명의 역사라기보다 올바른 선거법을 정착하기 위한 역사이며,선거제도의 공정성과 자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긴 인내와 투쟁의 역사이다.

대의민주제에 있어 의회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만약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불공정한 선거방법을 마련해서 각종 선거전에 임하게 된다면 그 국가의 정치와 사회에 엄청난 부패와 비리를 만연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역사에 깊게 새겨져 있다.불완전한 선거법과 비현실적인 선거제도,그 운영으로는 참다운 민의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선출하지 못할 뿐 아니라,의회민주체제의 정통성과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어 ‘투표 대신 탄환’‘언어 대신 폭력’,그리고 ‘의회 대신 내란’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9세기 말까지 영국에서조차 부패와 부정,매수와 향응이 선거에서 판을 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웨스트민스터 리뷰지는 1847년의 선거결과를 놓고 “가장 부도덕하고 치욕적인 것으로,병원마다 불구된 자,얻어맞은 자,만취하여 정신을 잃은 자들로 만원을 이루었다.”고 묘사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의 선거부패상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극심한 선거부패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 ‘부패행위방지법’의 제정이었다.이 법은 수뢰와 매수 등 부패행위에 대해 중형에 처하도록 하였으며,선거비용을 제한하고 회계보고의 의무를 엄격히 규정함으로써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잘못된 관행을 교정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지긋지긋한 정경유착과 정치부패의 고리를 끊고 내년 총선부터 선거를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르려면 정치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저항을 단호히 배격하면서 선거법과 제도를 혁명적인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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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동 일 충남대 사회과학대학장
2003-11-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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