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그린에세이] ‘홀인원 뒤풀이’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홀인원 뒤풀이’

김영두 기자 기자
입력 2003-09-16 00:00
수정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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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골프 라운드를 마치고 탈의실로 들어 가니 실내가 무척 소란스러웠다.나는 땀에 전 옷을 벗으며,샤워를 하며,화장을 하며,열린 귀로 들어오는 소음 중에서 환호와 비명과 탄식을 걸러내고 말이 될 만한 단어들만 수집했다.

“동그라미가 몇 개인 줄 알아? 7개야 7개….”

“파를 7개 했다고? 그럴 수도 있지 뭔 호들갑….”

“아냐,이 여사 남편이 그 소식을 듣는 동시에 통장에 입금시킨 액수가….”

“동시분양? 이젠 무주택 5년 아니면 안되는데….”

“이 여사가 홀인원을 했다니까.”

“홀인원했다고 남편의 축하금이 1000만원? 정말이야?”

“근데,캐디한테 얼마 줬대?”

“20만원 주던 걸.”

“난 작년에 홀인원하고 앞뒤 팀 캐디에게도 20만원씩 줬어.”

“역시 부잣집 사모님답게 후하셨네.”

“캐디들도 그거 가지고 그날 회식한데 잖아.”

“난 회원이라서 기념식수 하라고 할까봐서 캐디한테 클럽사무실에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조경수 참한 거 심으려면 단위가 더 커지잖아.”

벌거벗은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긴다.홀인원은 천우신조다.평생 골프를 쳤어도 홀인원을 못해본 사람이 해본 사람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기념비를 세우고 나무도 심어놓고,골프장에 올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비석을 쓸어보는 것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홀인원을 하면 3년 동안 재수가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잔치를 벌이고 하느님께 감사헌금을 바치기도 한다.홀인원을 기념하는 잔치를 베풀어 이웃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는 행위는 찬양할 만하다.

암으로부터 완쾌된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파고다 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점심 한 끼를 대접하는 사람도 있다.책을 출간하고 성대한 출판 기념회를 여는 시인도 있고,친지 몇 사람만이 모여 조촐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소설가도 있다.

홀인원한 사람은 동반자들의 경비까지 부담해서 기념 라운드를 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없다.홀인원을 할 당시 같이 라운드를 한 동반자들을 데리고 해외로 골프원정을 떠나든지 홀인원을 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에게 아예 숨기든지,그것은 홀인원을 한 당사자의 임의다.

만약 내가 홀인원을 하거나 70대 스코어를기록한다면,나는 내 골프생활 15년을 되돌아보는 뜻에서라도 조촐한 잔치를 벌이고 싶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2003-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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