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김형동씨 일가의 동네일꾼 75년/주민들,대보름 맞아 축하잔치 준비/「애국반」→「국민반」→「재건반」→「반상회」 변천/상부상조 전통 고수… 반장제도 “산증인”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째 반장일을 맡아오고 있는 김형동씨(60·경북 문경군 가은읍 왕릉1리)는 올해 정월대보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1917년 대보름 다음날인 음력 1월16일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반제도가 도입됐는데다 올해는 김씨집안에서 반장직을 맡아온지 꼭 75년째가 되는 날이어서 마을사람들이 이를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씨는 대보름날인 17일 아침 일찍 동네사람들과 함께 마을 대청소를 하면서 올해도 왕릉1리9반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김씨집안이 반장제도의 산증인이 된 것은 할아버지 세진씨(1971년 작고)가 이 동네 초대반장을 맡으면서 2대에 아버지 원한씨(79)가 대물림을 했고 이어 김씨가 지금까지 35년동안 반장으로 일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 반장 세진씨는 씨족마을인 이곳에서 27세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한학을 배웠고 객지물도 먹어봤다」는 이유로 마을 어른들에 의해 추대됐다.
세진씨는 일제 말기 공출을 종용받을 때는 주민들을 집으로 모아 공출량을 적게 조정하는 대신 남은 물자를 마을 공동으로 숨기는데 앞장서는 등 헌신적으로 일해 신망을 쌓았다.
이에따라 그가 반장직을 내놓자 주민들은 당연히 아들 원한씨가 대를 잇기를 바랐다.
형동씨가 3대째를 맡은 때는 25살이었던 지난 57년.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니면서 마을일을 익힌 그는 아버지가 「은퇴」를 선언하자 당연한듯이 반장을 맡았다.
김반장은 집안 3대의 반장 생활을 되돌아 보며 일제 때 「애국반」을 시작으로,해방후의 「국민반」,5·16이후 「재건반」,5공화국의 「반상회반」으로 반의 명칭과 내용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이 마을 「9반」은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이웃끼리 상부상조하는 초기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왔다고 자랑했다.그는 4남2녀의 자녀중 차기 반장을 노리는 아들이 있다고 귀띔하고 『앞으로 10년만 더 맡아 그 아들을 훈련시킨 다음,마을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반장직을 넘겨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웃의 불행을 걱정해 주는 김씨집 가풍으로 보아 4대째 반장도 김씨 아들이 맡아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문경=김동진기자>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째 반장일을 맡아오고 있는 김형동씨(60·경북 문경군 가은읍 왕릉1리)는 올해 정월대보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1917년 대보름 다음날인 음력 1월16일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반제도가 도입됐는데다 올해는 김씨집안에서 반장직을 맡아온지 꼭 75년째가 되는 날이어서 마을사람들이 이를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씨는 대보름날인 17일 아침 일찍 동네사람들과 함께 마을 대청소를 하면서 올해도 왕릉1리9반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김씨집안이 반장제도의 산증인이 된 것은 할아버지 세진씨(1971년 작고)가 이 동네 초대반장을 맡으면서 2대에 아버지 원한씨(79)가 대물림을 했고 이어 김씨가 지금까지 35년동안 반장으로 일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 반장 세진씨는 씨족마을인 이곳에서 27세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한학을 배웠고 객지물도 먹어봤다」는 이유로 마을 어른들에 의해 추대됐다.
세진씨는 일제 말기 공출을 종용받을 때는 주민들을 집으로 모아 공출량을 적게 조정하는 대신 남은 물자를 마을 공동으로 숨기는데 앞장서는 등 헌신적으로 일해 신망을 쌓았다.
이에따라 그가 반장직을 내놓자 주민들은 당연히 아들 원한씨가 대를 잇기를 바랐다.
형동씨가 3대째를 맡은 때는 25살이었던 지난 57년.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니면서 마을일을 익힌 그는 아버지가 「은퇴」를 선언하자 당연한듯이 반장을 맡았다.
김반장은 집안 3대의 반장 생활을 되돌아 보며 일제 때 「애국반」을 시작으로,해방후의 「국민반」,5·16이후 「재건반」,5공화국의 「반상회반」으로 반의 명칭과 내용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이 마을 「9반」은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이웃끼리 상부상조하는 초기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왔다고 자랑했다.그는 4남2녀의 자녀중 차기 반장을 노리는 아들이 있다고 귀띔하고 『앞으로 10년만 더 맡아 그 아들을 훈련시킨 다음,마을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반장직을 넘겨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웃의 불행을 걱정해 주는 김씨집 가풍으로 보아 4대째 반장도 김씨 아들이 맡아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문경=김동진기자>
1992-02-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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