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딸 사진 앞에서 고개 돌려…내주 초 현장검증

아내와 두 딸이 살해된 현장 사진을 그는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의 피의자 강모(48)씨는 경찰 조사 내내 담담한 태도를 보였으나 가족들의 사진 앞에서는 괴로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경찰 관계자는 8일 “아내와 딸과 관련된 진술을 할 때는 종종 눈물을 흘렸고, 범행현장을 찍은 사진 앞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질 못했다”고 전했다.

강씨는 지난 6일 경북 문경에서 경찰에 검거된 이래 사흘째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식음을 전폐하고 가끔 커피를 타서 주면 그것만 조금씩 마시는 바람에 기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전했다. 강씨는 “아내와 딸의 시신이 영안실에 안치돼 있는데 어떻게 음식이 입에 들어가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만난 강씨는 순한 성격으로 참혹한 범죄를 일으킬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공식발표에도 범행 동기는 여전히 의혹에 싸여 있다.

유명 대학 경영학과 출신 엘리트인 강씨는 외국계 회사에서는 상무까지 지냈지만 3년 전 실직한 뒤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두 딸에게 실직 사실을 숨긴 채 집을 담보로 5억 원을 빌렸고, 최근 1년간 집에서 약 1.5㎞ 떨어진 고시원으로 출퇴근하며 전업투자자로의 변신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가 집을 담보로 빌린 5억원 중 생활비로 지출한 1억원을 제외한 4억원을 주식에 투자했고, 2년 만에 2억 7천만원의 손실을 본 뒤 자포자기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씨가 2004년 사들인 이 아파트는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대형 아파트(146㎡)로 매매가가 11억원에 달한다.

급매하면 제값은 아니더라도 9억∼10억원은 받을 수 있다. 강씨는 주택담보대출 5억원 외에 다른 빚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강씨의 수중에 집을 담보로 빌린 돈 5억원 중 1억 3천만원이 남아 있다는 점, 강씨가 아내 통장에 3억원이 들어 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하면 대출금을 갚고도 최소 7억원에서 10억원 가량이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양가 부모도 모두 중산층으로 특별한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고, 부부관계도 원만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강씨가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성공 가도를 달리던 자신이 실직 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탓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경찰은 “강씨는 자기가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의지가 약하고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는 등 성격적 문제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범죄”라고 말했다.

강씨의 여동생은 전날 면회를 신청했지만 강씨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그는 서초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는 사이 몇 차례 취재진과 접했으나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떠한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오는 12∼13일 이틀간 현장검증을 할 계획이다.

한편, 유족은 이날 오후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영결식장에서 강씨의 아내와 두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

모자와 마스크,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유족 중 일부는 눈물을 글썽였고 “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보느냐”, “처벌을 원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양가 부모님 모두 굉장히 점잖으신 분들이었다”며 “장례절차를 논의하면서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고, 서로 위로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유족은 빈소를 따로 차리지 않았고, 9일 오전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