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80년 5월초부터 비상계엄 확대 계획…‘北 남침설’ 5·17에 악용

신군부, 80년 5월초부터 비상계엄 확대 계획…‘北 남침설’ 5·17에 악용

이세영 기자
입력 2007-07-25 00:00
수정 2007-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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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가 학생시위가 본격화되기 전인 5월초부터 비상계엄 확대를 통한 정국 장악을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으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조사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5·18 발포명령자는 이번에도 밝혀내지 못했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2·12,5·17,5·18사건과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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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태평로 외신기자클럽에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이해동(가운데) 위원장이 12·12,5·17,5·18사건과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24일 서울 태평로 외신기자클럽에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이해동(가운데) 위원장이 12·12,5·17,5·18사건과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과거사위에 따르면 5월초 육군본부는 ‘학생시위 대처방안’이란 문건을 통해 ▲군 투입 준비(5월7∼10일) ▲포고령 발표(11∼13일) ▲휴교령·계엄포고문 발표(14∼15일) ▲계엄군 투입(17일)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계획을 수립했다. 과거사위는 “문건 작성 당시 학생시위는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교내시위 수준이었다.”면서 “시위로 사회가 혼란해져 군이 나섰다는 신군부 주장은 5·17 계엄확대를 정당화하려는 거짓주장”이라고 결론지었다.

신군부가 계엄확대 명분으로 활용한 ‘북한남침설’에 대해선 당시 육본조차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육본 보고서를 통해서다.

과거사위는 “정치개입의 명분을 찾기 위해 대북정보를 악용한 것”으로 규정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발포의 최종 명령권자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과거사위는 “5월21일 작성된 2군사령부 문서를 통해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자위권 발동’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가 공개한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이란 문서에는 “전(全) 각하(전두환 지칭):초병에 대해 난동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는 내용이 수기(手記)로 적혀 있다. 초기 강경진압 과정에 황영시 당시 계엄부사령관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차 투입을 명령하고 자위권 발동 논의를 주도한 것도 황 부사령관이었다고 과거사위는 전했다.

한편 5·18 발포명령자 등 핵심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못한 것과 관련, 이해동 위원장은 “미흡하더라도 자기고백적 진상조사결과를 군 스스로 국민 앞에 공개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2007-07-2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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