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굳게 믿었는데 난민 문제에 있어서는 후진국인 것 같습니다.”
휴일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20여명의 미얀마인들이 사진과 그들의 주장이 담긴 게시판을 걸어놓고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등에서 활동하는 ‘정치적 난민’들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처럼 군사독재에 허덕이는 미얀마의 민주화 쟁취를 위해 한국에 망명해 싸우는 우리들의 신분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미얀마 민족민주…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 마우마우소(31)가 미얀마 민주항쟁 관련자료가 담긴 게시판을 들고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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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미얀마 민족민주…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 마우마우소(31)가 미얀마 민주항쟁 관련자료가 담긴 게시판을 들고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에 ‘정치적 난민’ 지위를 신청한 미얀마인 9명이 우리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 불허와 함께 강제 출국을 통보받은 것은 지난 3월 말. 이들은 강제 출국되면 미얀마에 입국하자마자 군사정권의 비밀경찰에 붙잡힌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들은 정치적 난민이라기보다 한국 내 장기체류를 원하는 불법 입국자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정부 “민주화운동 경력 증명하라.”
미얀마인 마웅저(37)는 2000년 5월 난민 지위를 신청한 뒤 5년 동안 한국 정부의 허락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그는 법무부로부터 “난민협약 제1조(정치적 이유로 자국에서 ‘충분하고 근거있는 공포’를 당하는 경우)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난민 인정 불허 통지를 받았다. 마웅저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이면 당장 한국 땅을 떠나야 한다.
미얀마는 아직 군사정권 치하에 놓여 있다.1990년 아웅산 수치 여사의 NLD가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군부는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다. 마웅저는 고등학생이던 88년 미얀마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을 때 ‘전국학생연맹’이라는 지하 학생운동단체에서 일했다. 그는 동료들이 하나 둘 비밀경찰에 붙잡혀가던 94년 10월 한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는 미얀마에 NGO(비정부기구)를 만들어 민주화운동을 이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마웅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모든 과정을 설명했지만 ‘당신의 민주화운동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미얀마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한국의 경험을 배우려고 이곳에 왔지만 기대와 달리 난민 인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모아(31)는 미얀마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투사’였다고 한다. 민주화 항쟁을 탄압하는 군사정권을 피해 94년 8월 브로커를 통해 한국 산업연수생 자격을 얻었다.
모아 역시 “군사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 경험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99년 NLD 한국지부를 만들어 현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아도 지난 3월 ‘정치적 박해의 사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해 7월 마웅저와 함께 추방될 처지에 놓여 있다.
모아는 “미얀마로 쫓겨나면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비밀경찰에 곧바로 붙들려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난민 신청자 급증… 인정요건 애매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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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난민 신청자는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1994∼2002년 9년간 166명이었던 난민 신청자가 2003년 83명, 지난해 145명으로 늘었고 올들어서는 넉달도 안돼 10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난민 인정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선정 요건도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미얀마 난민 신청자들은 지난 5년간 심사과정에서 단 한번도 적절한 통역을 제공받은 적이 없다.
또 직책의 유무를 중시하는 등 적용기준도 들쭉날쭉이다. 마웅저, 모아와 함께 난민 신청을 했던 19명의 미얀마인들 중 NLD 한국지부 간부 3명만 ‘투쟁 주도자’라는 이유로 2003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한국에 망명한 ‘줌마족’ 12명이 한꺼번에 난민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국내 외국인 난민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서 “법무부가 독립적인 난민인정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즉흥적인 심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난민 신청자들을 위해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 황필규 변호사는 “미얀마인들의 난민 지위 인정기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법무부에 면담 내용 열람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국가안전보장 등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법무부 “무조건 인정해주긴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망명 근거가 부족한 외국인의 난민 신청을 무조건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소 난민실 이인숙 주사는 “이번에 허가받지 못한 미얀마인들은 불법체류 상태로 오랫동안 머무르다 뒤늦게 난민 지위를 신청한 것”이라면서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될 것이 두려워 난민 자격을 신청했을 뿐 정치적 난민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정부가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들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장기체류 수단으로 악용 우려”
“난민 지위를 악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난민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무부는 국제 난민협약에 기초해 선의의 난민 신청자는 보호해야 하지만 협약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온정을 베풀 수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 출국관리과 김판준(49) 사무관은 “우리나라 난민 지위 인정은 난민협약 제1조에 명시돼 있는 ‘인종·국적·종교·정치적 견해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라는 기준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면서 “단 국내 장기체류의 방편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가려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무관은 미얀마인 9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들은 난민협약의 다섯가지 박해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으며, 대개 한국에 몇년 동안 머물렀던 사람들이라 장기 체류의 수단으로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3년 난민지위가 인정된 NLD 한국지부 간부 3명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집회나 시위에서도 전체 참여자가 아니라 주동자 일부만 처벌하는 것처럼 한국지부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과 단순 구성원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 않으냐.”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법무부도 올해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반응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부터 난민법 제·개정 연구위원회를 구성, 향후 방향을 모색 중이다. 김 사무관은 “인권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독립적인 난민 지위 인정기구에 대해 법무부도 나름대로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달라.”고 덧붙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색안경 벗고 우리 처지 이해를”
아웅 이엔트 스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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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이엔트 스웨 회장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간부들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것 같아 함께 투쟁해온 동료들에게 미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아웅 미엔트 스웨(42) 회장은 “함께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동료들이 결국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강제로 출국당하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애석해했다.
그는 2003년 부회장, 총무 등 2명의 한국지부 간부들과 함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회장이라는 직책은 늘 바늘방석이었다. 스웨는 “2000년 5월 난민 지위를 신청한 21명의 동료들은 모두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직책의 유무로 민주화 운동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웨는 한국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난민 지위를 신청한 이유를 묻자 “입국 초기에는 다들 미얀마의 민주화에만 주목했지 각자의 신분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못했다.”면서 “1999년 한국지부의 한 간부가 불법체류자로 몰려 강제출국당하고 나서야 신분 확보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동료들이 미얀마에서의 박해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한국정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5년간 우리 동료들이 자기 처지를 설명할 수 있었던 기회는 겨우 15∼20분에 걸친 4∼5차례의 면담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스웨는 “미얀마가 민주화되면 우리는 반드시 한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국인들도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만큼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고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2005-04-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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