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가 무대에 설 수 없다면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일 것이다.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문훈숙(41)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장.많은 이들이 무대 위의 화려한 문훈숙을 기억하고 있지만 이제 무대에서는 그를 볼 수 없다.오른쪽 발가락 부상으로 재작년 이후 일절 무대에 오르지 않은 채 UBC 행정업무에만 열중하고 있는 그는 예상 밖으로 “지금 아주 행복하고 편안하다.”라고 말한다.8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해 30년간 춤에만 매달려 살았던 그다.그런데 무대를 떠난 뒤 행복하단다.춤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일까.그 의문에 이런 말로 궁금증을 풀어준다.“발레는 인간의 몸을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무용입니다.발레리나도 뼈를 깎는 수행에 정진하는 수도승들의 고행과 같은 마음가짐 몸가짐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지요.” 발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무대를 떠나 경영인으로 변신했지만,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답게 발레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종원기자 j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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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무대를 떠나 경영인으로 변신했지만,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답게 발레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종원기자 jongwon@
●약혼자 사고로 죽자 영혼결혼식 선택
올해로 창단 20년을 맞은 UBC는 사실 문훈숙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중심에는 항상 문훈숙이 있었다.21살 때 문선명 ‘초종교초국가 평화의회(IIPC)’ 총재의 차남과 약혼했으나 결혼을 앞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영혼 결혼’을 선택했다.그의 이름이 ‘박훈숙’아닌 ‘문훈숙’이 된 건 그래서다.1984년 시아버지인 문 총재와 그의 친정아버지인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 그를 위해 창단한 게 바로 UBC.
●창단 20주년 기념 ‘라 바야데르’ 공연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UBC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은 당연한 일.‘세계 정상의 발레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는 수준으로 일궈냈다.지난 3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라 바야데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어느 공연에서도 자신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다.”는 그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춤에 관한 한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했고 철저했다.
“무대에서 내려오고 보니 마치 왕관을 쓴 왕에서 평민으로 전락한 느낌입니다.소외감마저 느꼈지요.무용수를 그만둔 직후엔 30분을 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는데 지금은 움직이는 게 힘이 들 정도가 됐어요.무용을 할 때는 내 몸 하나에만 신경을 쓰면 됐지만 지금은 발레단 전체를 보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국제무대에서도 유명인사가 됐지만 처음부터 발레리나가 될 꿈은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발레를 시작한 데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여섯 살때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학교를 다니게 된 게 시작.10살 때 한국으로 와 리틀엔젤스에 입단,한국무용을 하면서 발레리나의 인생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선화예중 선화발레학교에서 발레 수업을 쌓았다.고교1년때 영국 로열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해 로열발레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뒤 모나코 왕립발레아카데미로 옮겨 2년간 몸담았고 이후 미국 워싱턴발레단에서 2년간 활약하다가 1984년 UBC 창단과 함께 수석무용수로 입단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젤’ 통해 한국발레 세계에 소개
1987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가 자랑하는 키로프 발레단과 함께 ‘지젤’을 공연해 극찬을 받아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인정받았고 1998년 미국 뉴욕 시티센터에서의 ‘백조의 호수’,그 이듬해인 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페라극장에서의 ‘지젤’을 통해 한국발레를 처음으로 세계에 보여주었다.“저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 첫 공연 때 한국의 발레를 처음 소개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어요.공연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받고는 펑펑 울었지요.”
1998년 연습중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을 다치고도 미국·유럽 공연에 나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게 화근.2001년말 재발해 결국 무대에 다시 설 수 없게 됐다.오는 10월로 예정된 예술의전당 ‘심청’공연 때 무대에 다시 서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고 있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95년부터 맡아온 UBC 단장직을 내놓지 않은 이상 무용수 겸임은 필연적으로 행정업무의 공백을 초래하기 때문이란다.‘한국이 낳은 가장 걸출한 세계적 프리마 발레리나’란 수식어가 부담스럽고 항상 최고의 춤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단장직을 맡고 있는 한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고 물러선다.“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연습할 땐 행정 생각,사무실에선 연습 생각을 하느라 힘들었습니다.이젠 내가 아니라도 훌륭한 후배와 제자들이 많은데 제가 굳이 무대에 설 이유가 없잖아요.”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던 김세연이 지난 1월 보스턴 발레단에 입단하자마자 주역을 따냈고 러시아와 미국 일본 등 무용 선진국들이 대거 참여한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한국 학생들이 3년 연속 입상할 정도로 우리 발레의 수준은 급상승하고 있다.적지않은 우리의 발레리나들도 해외에서 큰 두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춤추는 끼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오고 보니 발레가 너무 대중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CF에도 발레리나가 등장할 만큼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발레는 어렵고 고급스러운 장르로 인식되고 있지요.”
●위기에 처한 클래식 발레 부흥 다짐
축구나 골프에서 기본적인 게임의 룰을 알고 본다면 흥미가 더해지는 것처럼 발레도 기본적인 공식만 안다면 훨씬 더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그래서 이젠 많은 사람들에게 발레를 알리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UBC가 오랜 전통을 지닌 세계적 발레단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앞으로는 ‘클래식 발레의 위기를 동양의 발레단이 부흥시켰다’는 평에 걸맞은 활동을 펼치겠습니다.” 지금까지 다져온 UBC의 성과와 정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교육과 공연레퍼토리에 있어서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전석을 유료 관객으로 채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문훈숙.‘무대는 용서가 없다.’는 신조로 철저하게 자기를 지키고 관리해온 프리마 발레리나는 그 날을 맞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