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의 느리게 키우기]내 아이가 뒤처질까 두렵다면

[신의진의 느리게 키우기]내 아이가 뒤처질까 두렵다면

입력 2011-02-20 00:00
수정 2011-02-2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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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엄마들 사이의 주요한 이슈 중 하나가 ‘우리 아이를 영재로 키우자’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학습 자극을 많이 줄수록 잠재력이 계발되어 영재가 된다는 논리이다. 도대체 영재가 뭐기에 이렇게 호들갑일까? 영재가 되면 내 아이가 행복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일까? 내가 영재신드롬을 우려하는 이유는 최근 그 부작용으로 병원에 찾아오는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아이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심각한 정신적 부작용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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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계발할 수 있는 잠재력은 잠재력이 아니다

어린 시절, 특히 만 5세 미만은 일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세상을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의 아동들에게 문자나 어른의 논리적 사고력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자신의 발달단계보다 앞질러 나갔을 때 아이가 똑똑해지기는커녕 소화되지 않은 지식을 그대로 암기해버리는 습관을 만들어 사고력이 약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는 사실을 과연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뇌와 관련된 사람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뇌의 인위적 계발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잠재력이다. 사람이 계발할 수 있는 잠재력은 이미 잠재력이 아니다. 잠재력은 말 그대로 숨겨진 능력, 그래서 언제 발현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능력이다.

우리는 숨겨진 잠재력을 뒤늦게 꽃피웠던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열등생 중의 열등생으로 선생님이 가르치기를 포기했다는 아인슈타인, 가정교사를 수없이 바꾸며 공부가 싫어 도망을 다녔던 영국의 처칠 수상, 엉뚱한 생각 때문에 정규 학업을 포기했던 에디슨 등은 뒤늦게 꽃핀 대표적인 천재들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초등학교 시절 장난이 심하고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다 중·고등학교에 가서 갑자기 의젓해지며 우수한 성적을 내는 친구들을 적지 않게 본다.

이런 경우가 바로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라고 부르는 소위 늦되는 아이들이다. 분명히 잠재력은 있는데 어린 시절에는 발현되지 않다가 일정 기간 성장 후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동들이 이에 해당된다.

영재는 없다

아동들의 뇌 발달의 특징은 마치 우리의 얼굴 모습이 제각각 다르듯이 다양하다. 따라서 뇌 성장이 완성되는 사춘기 이전에는 모든 아이들의 능력을 획일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우리가 영재신드롬에 빠질수록 많은 잠재력을 지닌 레이트 블루머들이 입을 피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이 땅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영재신드롬은 부모로 하여금 자신의 아이가 영재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도록 조장한다. 자극을 주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은근히 위협한다. 그 와중에 죄 없는 아이 또한 스스로 남과 비교하며 위축감을 느낄 것이고, 아이의 가능성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된다.

이제 영재신드롬이 더 번지기 전에, 이 땅 대다수의 레이트 블루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기르는 우리 부모를 위해 영재의 허상에서 벗어나자. 영재는 없다. 다만 잠재력이 풍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 아이가 있을 뿐이다. 아이가 뒤처질까 두려울 때, 뭔가를 가르쳐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 때 꼭 기억하자. 내 아이가 바로 레이트 블루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의진_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신의진의 아이심리백과> <현명한 부모들이 알아야 할 대화법>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등 10여 권의 자녀교육서를 썼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조기교육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으며 ‘남들 하는 대로’라는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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