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는 페이크’… 잔혹한 춤, 카타르시스 부를까

‘핑크는 페이크’… 잔혹한 춤, 카타르시스 부를까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입력 2025-08-27 00:07
수정 2025-08-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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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온 싱크 넥스트 25 ‘핑크’

부드럽지만 불안한 핑크색 이중성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폭력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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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김성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안무가 김성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분홍색은 대체로 사랑스럽고 달콤하다. 풍선껌 분홍으로 불리는 ‘드렁크 탱크 핑크’(drunk tank pink)가 폭력성을 줄인다는 심리학 실험도 있다. 디즈니랜드의 상징인 분홍빛 성은 꿈과 환상의 나라를 완성한다.

안무가 김성훈(43)은 핑크의 이면을 봤다. 문학에서 ‘핑크빛 미래’가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부드럽지만 잔혹하다. 그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때 드러나는 홍조, 상처가 남긴 흉터는 모두 핑크빛이다.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느낌도 내포한 색깔”이라고 풀이했다.

28~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김성훈 온 싱크 넥스트 25(on Sync Next 25)’는 ‘핑크’를 내세워 무심코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공연은 ‘상당한 수준의 선정성과 잔혹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경고를 써 놓은 ‘19세 이상 관람가’다. 가학적인 장면이 있고 때론 무용수가 피 칠갑하고 나체로 춤을 춘다.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에서 만난 김성훈은 ‘아르토 기법’부터 꺼냈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활동한 앙토냉 아르토가 창안한 ‘잔혹연극’ 이론으로,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연극은 기만이며 육체 언어를 통해 현실의 삶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격적인 장면,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이 기법은 한국 연극계에서는 다양하게 시도됐지만 무용에선 드문 실험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서울시무용단 공연 ‘일무’의 공동안무자로 우아하고 강렬한 칼군무를 보여 줬던 그가 이번엔 그 아르토 기법을 가져왔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공연에 대한 갈증이 조금 있었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불쾌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또 아무렇지 않게 여길 법한 기준점이 어디쯤인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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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 고동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무용수 고동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무대에는 8명의 남성 무용수가 오른다. 김성훈이 여러 공연에서 동작과 표현력을 보고 ‘찜해 놓은’ 무용수들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서 섬에 불시착한 소년들처럼 야만적인 본능을 깨우고 집단의 광기를 발산한다. 이날 연습에서 ‘맞고 밟히고 내동댕이쳐진’ 고동훈(30)은 “공연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 다른 무용수들과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함께 많이 공연했던 친구들이라 합도 잘 맞아 부상 위험은 크지 않다”며 웃어 보였다.

무대는 밝고 단순하다. 무용수들도 평상복을 입고 등장한다. 무용수들의 몸과 약간의 소품들로만 잔혹성을 드러내는 건 “평범한 일상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너무나 많이 발생한다는 걸 더 잘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다.

새로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무용수들에게도 크다.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에 출연했던 고동훈은 “매체에선 내 얘기를 줄이고 남과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표현하는 데 결핍이 느껴졌다”면서 “무용수들이 각자 억압된 감정이나 생각, 열정을 다 풀어내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고 했다. 김성훈은 “법에 걸려서 그 많은 아이디어를 다 담지 못했다. 이번에 많이 배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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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공연 특이점은 관객들에게 자유롭게 퇴장해도 좋다는 사실을 미리 공지한다는 점이다. 김성훈은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가는 것조차도 하나의 감각”이라며 “관객들에게 감각을 일으키는 것도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객들의 불평을 듣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의 ‘싱크 넥스트’가 가진 실험성 덕에 이런 시도도 해 본다”며 웃었다.
2025-08-2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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