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30돌 맞은 문학과지성사

창사30돌 맞은 문학과지성사

이순녀 기자
입력 2005-12-02 00:00
수정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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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여름,30대 중반의 두 사내가 서울 종로구 청진동 골목을 한 시간 넘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세들 만한 사무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흘간 발품을 파는 데 지친 한 사내가 말했다.“회사 안 하면 안 될까. 솔직히 난 별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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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4K’로 불렸던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왼쪽부터).1970년 계간 ‘문학과지성’창간 당시 찍은 사진이다.
‘문지 4K’로 불렸던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왼쪽부터).1970년 계간 ‘문학과지성’창간 당시 찍은 사진이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김주연과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병익. 이들은 1970년 창간한 계간 ‘문학과지성’의 동인인 김현, 김치수 등과 출판사를 차리기로 하고 대표로 사무실을 구하던 참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사무실 찾기를 포기했더라면 아마도 지난 30년 간 우리 문학계는 크나큰 손실을 입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이들은 청진동 3-3에 7평짜리 사무실을 얻었고, 그해 12월12일 회사 문을 열었다.1970년대 이후 창작과비평사(창비)와 더불어 우리 문학계의 양대 기둥 역할을 해온 문학과지성사(문지)의 공식적인 출발일이다.

서른살 생일을 앞둔 문지가 단행본 형식의 사사(社史)‘문학과지성사 30년,1975∼2005’를 펴냈다.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이인성 성민엽 등 역대 편집 동인들과 김윤식 신용하 김원일 정현종 등 문지와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문인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글들을 한데 묶었다.

김주연은 “유형 자산은 동인 각자가 출연한 총 1000만원이었으나 돈보다 소중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정열, 그리고 출판사를 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린 정치적 억압과 이에 대한 분노였다.”고 회사 설립 당시를 회고했다. 김치수는 “계간 ‘창비’(66년 창간)가 실천적 지성에 비중을 두고 문학의 현실 참여를 주장한 반면, 계간 ‘문지’는 이론적 지성으로 현실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시도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계간 ‘문학과지성’은 1980년 7월말 신군부에 의해 강제폐간된 뒤 무크지 ‘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1987년 ‘문학과사회’로 제호를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1990년대 들어 출판 상황이 달라지면서 수필집, 아동도서, 참고서 등과 번역 소설을 내지 않는다는 창사 당시의 출간 기준은 깨졌다. 하지만 자비출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만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1990년 문지 동인의 주역인 김현이 세상을 뜬 데 이어 3년 뒤 재정적 후견인이던 황인철 변호사마저 유명을 달리하면서 문학과지성사는 주식회사로 바뀌었다.2000년에는 1세대인 김병익 대표가 상임고문으로 물러나고 채호기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경영권이 다음 세대에 이양됐다.

문지는 9일 오후 6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출판 기념회를 겸한 창사 30주년 행사를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12-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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