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매뉴얼’ 밖에선 허둥댄 정치리더십

日 ‘매뉴얼’ 밖에선 허둥댄 정치리더십

입력 2011-04-11 00:00
수정 2011-04-1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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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위기대응’ 허실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을 강타한 뒤 한달이 흘렀지만 열도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동북부 해안도시를 집어삼킨 쓰나미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벌거벗은 일본 사회가 근본적 취약성을 드러낸 채 서 있다. 경제대국 ‘주식회사 일본’을 만들어낸 ‘매뉴얼 문화’는 전례없는 위기 앞에 힘을 쓰지 못했고 유약한 정치 리더십은 혼란만 가중시켰다. 그 사이 안전 신화를 자랑하던 일본의 원자력 발전 기술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지진 이후 한달간 드러난 구조적 한계에는 ‘잘나가던 일본 경제가 왜 주춤한가.’라는 질문의 답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재난 수습 과정에서 노출된 시스템의 허점을 고치지 못하면 일본 경제의 재도약은 요원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지진 이후 가장 두드러진 일본 사회의 취약점은 강력한 정치 리더십의 부재였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벌어진 방사성물질 유출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한계가 선명히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에 사고 수습을 맡겼다가 지진 발생 5일 뒤에야 정부 차원의 통합본부를 꾸릴 만큼 굼뜨게 대응했다. 또 간 나오토 총리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정면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대신 방사능 누출 책임을 도쿄전력 측에 떠넘겨 국민적 불안감만 키웠다.

2009년 8월, 54년 동안 집권해온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렸던 민주당은 성난 민심 앞에 새로운 정치의 싹을 피워보지 못한 채 반신불수가 됐다. 민주당은 10일 진행된 제 17회 지방선거에서 최대 승부처였던 도쿄도에서 패하는 등 고전했다. 제1야당인 자민당 지원을 받은 무소속 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도지사가 4선에 성공한 반면 민주당 도의회 지원을 받은 와타나베 미키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고 일본 언론이 출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했다. 앞서 간 총리는 야권에 단합하자며 ‘대연립’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9일 “(방사성물질 유출에 대응하는) 현 정권의 방식은 너무 시간이 걸린다.”고 비판하는 등 여권마저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다.

유약한 정치 지도력은 일본 경쟁력을 깎아내려 온 오래된 문제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료적 성향이 강한 일본의 내각제 시스템 때문에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아져 시장 주체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매뉴얼에만 목매는 사회 체계의 취약성도 원전 사고 대응 과정에서 노출됐다. 일본 정부는 1995년 한신대지진의 경험을 토대로 세운 지침에 맞춰 강진으로 무너진 도로 등을 신속히 복구했으나 경험해 보지 못한 원전사고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뒷북 대응을 했다.

일본 산업이 최근 부쩍 힘을 잃어 가는 원인 중 하나도 바로 매뉴얼 의존증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 목표를 정하고 미국 등을 모방하며 연구 개발, 산업 발전을 이루는 데 탁월했다.”면서도 “그러나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벤처정신이 필요한데 일본은 이 부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매뉴얼 문화는 전후 일본의 도약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일본이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정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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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1-04-1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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