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 뜻 따라 변신하는 黨이 이긴다”/박노호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

[기고] “국민 뜻 따라 변신하는 黨이 이긴다”/박노호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

입력 2006-09-28 00:00
수정 2006-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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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9·17 총선 결과 사상 세번째로 사민당 내각이 물러나고 보수·중앙·자유국민·기민당 등 비사회주의 계열 4개 정당연합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사회주의 정권에서 비사회주의 연립내각으로의 정권 교체를 두고 국내·외 언론은 스웨덴 사회정책의 기조가 ‘분배’에서 ‘성장’으로 급선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스웨덴 사회제도의 형성 과정과 이번 총선을 앞두고 추진된 비사회주의 진영의 정책 변화를 고려치 않은 것으로 현실과 전혀 다른 분석이다.

이른바 ‘스웨덴 모델’은 1932년 이후 9년을 제외한 전 기간을 집권했던 사민당의 주도 아래 형성되긴 했지만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절충의 산물이기 때문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제도 전반을 뒤흔드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비사회주의 진영이 집권하게 되면 복지 시스템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민당의 공격에 대해 4개 정당은 집권하더라도 스웨덴 사회제도의 근간을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점을 국민에게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양 진영 모두 스웨덴 민심이 기존 사회제도의 유지에 있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총선 쟁점은 스웨덴 모델의 존폐 여부가 아니라 그 운용 방법에 있었다.

사민당은 패했지만 사민주의는 살아남았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9·17 총선 결과는 분배와 성장 사이의 선택이라는 관점보다는 승패 요인의 분석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사민당은 경기 호조를 이유로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실업을 선거 이슈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비사회주의 진영에 지지 기반을 잠식당했다. 또 하나는 정당 정치와 팀플레이에 익숙해 있는 국민들에게 사민당의 요란 페르손 총리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 생경함을 느끼게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더해 2003년 유로화(貨)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부결,2004년 말 동남아 쓰나미(지진해일) 참사에서 스웨덴인들의 희생이 가장 컸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대처를 엉성하게 함으로써 집권당에 대한 실망을 키웠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는 패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비사회주의 진영의 4개 정당연합은 이미 2004년부터 총선 공조를 약속하고 공동 공약을 발표하는 등 견고한 결속력을 보여주었으며, 집권하더라도 사회제도의 근간을 지킬 것임을 일관되게 강조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불안을 씻어냈다. 특히 프레드릭 라인펠트 보수당 당수는 정통 보수주의 노선에서 유권자가 밀집돼 있는 중도쪽으로 한걸음 옮겨가는 정책 변신을 통해 국민 곁에 다가가는 진정한 정치인임을 부각시켰다.

결국 4개 정당연합은 공고한 결속력과 국민의 뜻에 따라 이념 궤도를 수정하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정권 교체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반면, 사민당은 단독 소수내각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식상함과 스웨덴 모델의 운용과 관련된 설득력 있는 대안 부재라는 벽에 부딪쳐 민심이 집결되어 있는 중도로의 접근에 실패,12년만에 다시 정권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스웨덴 총선이 현지 정치권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주는 교훈은 지극히 간단하다. 섣부른 정치 실험을 하지 않고 국민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해 국민 곁으로 다가가며, 이를 위해 과감한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당만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정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박노호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
2006-09-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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