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메이커 시티’ 세운상가/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메이커 시티’ 세운상가/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17-11-30 22:40
수정 2017-11-3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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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로 세운상가 851호.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발길을 붙든다. 안으로 들어서니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제작에 필요한 부품들이 가득하다. 주인 류재용(72)씨는 50년 경력의 오디오 제작·수리 전문가다. 2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앰프를 만들면서 젊은이들과 같이 일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세운상가에서는 류씨처럼 ‘살아 있는 맥가이버’로 불리는 기술장인 16명이 창업 새싹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5층에 위치한 ‘팹랩 서울’. 제조업 예비 창업자에게 3D프린터, 레이저커터 등을 활용한 시제품 제작법을 알려 주고 개발 장소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우주인 후보에서 3D프린팅 스타트업 사업가로 변신한 고산 에이스벤처팀 대표가 2013년에 문을 열어 4년째 운영하고 있다. 고 대표는 “누구나 상상 속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종로에서 청계천, 을지로를 이어 주는 보행데크를 따라 펼쳐진 창작·개발 공간 ‘메이커스 큐브’에는 20여개의 청년 스타트업 기업이 입주해 있다.

지하 공간도 특별하다. 방치됐던 보일러실을 리모델링해 서울시립대가 로봇기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 수십대의 컴퓨터 사이에 낡은 보일러 시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크린 골프장을 지어 수익사업을 하겠다는 상가회를 설득해 공공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곳에 없으면 대한민국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자·전기 제품의 메카였던 세운상가. 이후 쇠락의 길을 걷던 세운상가가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인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단장해 재개장한 지 70여일이 지났다.

종묘와 바로 연결되는 ‘다시세운 광장’, 사방이 확 트인 도심을 한눈에 조망하는 ‘서울옥상’, 청계천을 발아래 둔 ‘공중보행교’ 등 확 달라진 외양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는 세운상가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전진 기지로서 ‘메이커 시티’를 표방한 세운상가의 진짜 혁신은 사람이다. 기술의 역사를 지켜 온 토박이 장인과 미래의 기술을 이끌어 갈 청년의 협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모한 이곳에서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날지 벌써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대를 한 바퀴 돌면 탱크도 만들고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세운상가의 오랜 자부심이 흘러간 옛 명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화려하게 부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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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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