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엄동을 지나는 것들이 도처에 푸르다. 주먹 불끈 쥐고 한창인 물미역, 쇠미역, 톳. 뜨거운 물에 살짝만 데쳐도 바다보다 더 새파랗게 겨울을 증명한다.
제철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을 보면 저절로 애틋해진다. 겨울바람을 달게 견디는 생명의 치열함. 제때를 찾아 반드시 돌아온 신의(信義).
자투리 볕을 쬐고 자란 수고가 얼만데, 찬 서리를 삼킨 노고가 얼만데. 천원짜리 몇 장에 저녁 밥상이 푸르러졌으니 이만하면 기적이다.
돈으로 다 저울질되지 않은 것들이 겨울마다 돌아와서는 겨울마다 꿋꿋하다. 알맞은 때, 알맞은 자리에 그저 있어 주는 것들은 보잘것없이도 빛난다. 있는 듯 없는 듯 왔다 가는 것들을 따라 겨울은 왔다 가고 있는 것이다.
2024-01-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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