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유커 600만 시대, 그러나 여기는 서울/황수정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유커 600만 시대, 그러나 여기는 서울/황수정 문화부장

입력 2014-09-26 00:00
수정 2014-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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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논설위원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필수 방문 코스로 통하는 서울 중구 명동의 유명 백화점. 대부분의 의류 매장에서 조선족 판매원들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내국인 손님이면 판매원은 쭈뼛쭈뼛 응대하다 한국인 매니저를 불러준다. 한국인 손님이 흡족할 수준으로 상품을 상세히 설명해주기 벅차기 때문이다. 난감하기는 상대 쪽도 마찬가지다. 상품의 세부정보를 좔좔 쏟아내지 못하는 판매원이 답답하기만 하다.

서울을 찾은 유커들이 반드시 들르는 서울역의 대형마트는 사정이 더하다. 어딜 가나 중국 쇼핑객들이 좋아할 품목 위주로 생필품이 정렬돼 있다. 화장품 등 몇몇 매장에서는 한국어 안내를 받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기도 한다. 자정까지 영업하는 매장에서는 유커들이 한밤중에도 잠을 안 자고 열심히 지갑을 연다. 그래서 동대문 쇼핑몰, 명동거리에서도 정작 한국인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어느 화장품 매장에선 우리말이 어눌한 조선족 판매원을 대신해 ‘해결사’로 불려온 사람이 한국어 구사력이 조금 더 나은 조선족이어서 황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주객이 전도된 풍경은 서울시내에 이 말고도 많다.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아침 출근시간에도 사직공원 앞은 가뜩이나 좁은 도로의 한 개 차선이 유커 관광버스들 차지다. 급회전이 이뤄지는 그 비좁은 도로를 출근전쟁 시간대부터 관광버스에 내주는 서울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지갑을 열기로 작정하고 찾아오는 중국인들이 내수 경제에는 가뭄에 단비다. 유커들의 증가세는 무섭다. 지난해 432만명이던 것이 올해는 600만명까지 올라갈 전망이라 한다. 서울에 머물다 간 유커는 올 들어 지난 7월까지만 336만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손뼉만 치고 있을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유커 행렬의 알짜 수혜자는 백화점 같은 몇몇 유통업체들이다. 돌아가는 그들이 화장품, 옷 보따리 말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가는 게 얼마나 있을지 생각하면 민망해진다. 십중팔구 패키지 관광족인 그들에게 서울은 지금 쇼핑천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때 우리가 열광했던 홍콩 명품관광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명동과 지척인 덕수궁, 경복궁 주변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유커는 드물다. 서울시내 지도를 짚어가며 인사동 길을 완상하는 유커는 더더구나 보기 어렵다.

우리가 들러리가 되고, 우리 것을 스스로 홀대하는 문화의 표정은 저열하다. 그 힘이 오래갈 리 없다. 그래서 이제라도 자존심을 챙기면 좋겠다. 유커 600만명 시대에 서울의 간판 백화점들이 우리말로 당당히 물건을 팔면 좋겠다. 해외 빈국들에서 “싸다, 싸” 외마디 한국어로 비위를 맞춰주는 관광체험을 우리도 해보지 않았던가. 그 초라한 후진국형 관광체험이 수도 서울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 자존심의 콧대가 높기로 소문난 유럽의 나라들을 굳이 끌어올 것도 없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베이징 왕푸징 거리를 최근 들렀다. 그곳에서 조선족 판매원이 입의 혀같이 한국어로 비위 맞춰주는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다. 지갑을 열어주길 바라면서도 “우리를 느끼고 가는 건 당신 몫”이라는 배짱이 읽혔다.

요즘 세상에 말이 통하지 않아 물건을 못 사는 얼치기 관광객이 몇이나 되겠나. 생활 한국어 몇 문장이라도 외워 오는, 그 여행의 묘미를 그들에게도 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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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h@seoul.co.kr
2014-09-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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