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요즘은 정치 기사가 제일 재미있다/이두걸 산업부 기자

[지금&여기] 요즘은 정치 기사가 제일 재미있다/이두걸 산업부 기자

입력 2011-09-17 00:00
수정 201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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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걸 산업부 기자
이두걸 산업부 기자
기자들은 정작 기사를 많이 읽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부서 외의 기사는 일반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나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매일 쏟아지는 기업과 정책 기사를 챙기는 것만 해도 벅차다.’고 변명해 보지만, 9할 이상은 게으름 탓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안풍’(安風) 덕분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관련된 정치 기사는 웬만하면 챙겨본다.

안 원장 관련 기사에는 생소한 단어가 자주 거론된다. ‘권력의지’와 ‘정당정치’다. 전자는 안 원장이 정치적인 욕망이 부족하고, 후자는 바람이 아닌 정당이 정치의 근간이 돼야 한다는 내용과 관련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지만 현실 정치에서 좌초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팩트’다. 정당과 의회가 민주주의의 귀결이라는 의견에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안 원장이 주도한 ‘청춘콘서트’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는 듯하다. 지난 2년 동안 전국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얻기 위해 청춘콘서트로 몰려들었다.

젊은이들은 왜 희망을 잃었을까. 대학에 입학하면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등록금 폭탄과 학점 등 스펙 경쟁이다. 졸업 뒤 정규직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 경제는 대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던 과거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 수출 중심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서비스 산업 활성화 역시 기성세대의 반발로 쉽지 않다.

하지만 정치의 일차적인 존재 의의는 ‘사회를 위한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다. 안풍은 기존 정치가 젊은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가치를 배분하는 데 실패했다는 현실을 웅변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의 복원이다. 청년들을 보듬는 구조로 우리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다양한 목소리를 절충하는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지만 외면해서도 안 될 과제다. 제 한몸 편하자고 자식 고생하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부 기사에서 재미뿐 아니라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강동엄마’ 박춘선 서울시의원 “사후 대응은 늦어… 먼저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지원해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박춘선 의원(강동2, 국민의힘)은 지난 1일 열린 제339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제2차 교육위원회에서 과밀학급 지원체계, 학생 도박·마약 예방, 직업계고 졸업생 진로관리 등 서울교육의 주요 현안을 점검하고 정책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박 의원은 획일적인 과밀학급 분류 기준을 폐지하고, 학급당 학생 수나 지역별 증가 추이 같은 객관적 지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과밀 정도에 따라 지원의 우선순위와 규모를 차등화하는 데이터 기반의 선제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교의 수동적인 신청 방식에만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처럼 학생 증가가 확실시되는 지역은 문제가 터진 뒤 수습하는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주 계획과 학령인구 변화를 선제적으로 분석해, 교육청이 먼저 부지를 발굴하고 필요한 학교 설립을 주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와 함께 과밀학교와 과소학교의 여건을 함께 살펴 유휴교실을 늘봄이나 돌봄 등에 탄력적으로 활용하고, 과밀지역에는 모듈러 교실 등 다양한 공간 확충 방안을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학교별 지원·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별·학교별 추진 상
thumbnail - ‘강동엄마’ 박춘선 서울시의원 “사후 대응은 늦어… 먼저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지원해야”

douzirl@seoul.co.kr
2011-09-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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