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전족과 ‘초정상 자극’/양세욱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화마당] 전족과 ‘초정상 자극’/양세욱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입력 2009-10-22 12:00
수정 2009-10-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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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인근의 수향 우전(烏鎭)에는 ‘삼촌금련관’(三寸金蓮館)이라는 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은 중국 최대 규모의 전족 전문 전시관으로, ‘세 치의 황금 연꽃’은 전족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 주말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주최 측의 안내로 이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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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1000여년 전인 중국 오대(五代) 시기에 무희들이 발끝으로 추는 춤에서 유래된 전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궁중에서 귀족 계층으로, 다시 기방과 민간으로 퍼져나갔다. 최고 전성기인 청대 중·후기에는 중국 전체 여성 인구의 80% 이상이 전족을 할 정도로 크게 유행하기에 이른다. 발의 크기는 점점 작아져 “세 치는 금 연꽃, 네 치는 은 연꽃, 다섯 치는 철 연꽃”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세 치는 대략 10cm이다.

전족한 발은 신부가 마련해가는 최고의 예물이었고, 여성의 제3의 성기로까지 여겨졌다. “남자들의 질펀한 연회를 위해 마련한 한 접시의 안주”라는 설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뼈가 너무 무르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다섯 살에서 여덟 살 무렵의 여아에게 시술되는 전족이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오죽하면 “작은 발 한 쌍에 눈물 한 항아리”라는 속담까지 나왔을까.

박물관을 둘러보고 상하이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류 역사에서 최장 시간 동안 최대 규모로 유행한 이 여성 신체의 개조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전족이라는 행위가 사실은 생물계에서 보편적인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us)의 한 사례이다. 생물계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선호되는 자극과 신호들은 흔히 평균치를 멀리 벗어난다. 생물계의 수컷들은 암컷들을 인식하는 자극들에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번식기에 이른 큰흰줄표범나비 수컷들은 독특한 빛깔과 날갯짓으로 자기 종의 암컷을 감지하고 좇는다. 생물학자들은 기계적으로 날개를 퍼덕이는 플라스틱 모형들로 수컷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욱 놀라운 현상은 수컷들이 진짜 암컷들을 외면하고 가장 크고 밝고 빠른 모형 암컷들을 좇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초정상의 암컷들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어놀리 도마뱀의 수컷들이 동종의 다른 도마뱀 사진들을, 심지어 작은 자동차 정도로 큰 이미지들을 선호한다거나, 재갈매기에게 색칠이 잘 되고 덩치가 큰 나무 갈매기 모형을 보여 주면 자기 알도 내팽개친다거나 하는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의 초정상 자극은 인간 사회, 특히 여성들이 신체적 매력을 발산하는 방식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조선시대에 여성들의 머리에 얹는 가채의 크기가 점점 커져 목이 부러지는 일이 빈번했다거나, 중국에서 점점 가는 허리가 선호되면서 굶어죽는 이들이 속출한 것 등이 두드러진 사례이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찰대로, 미용 산업 전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초정상 자극들의 제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는 눈을 크게 보이게 해주고, 립스틱은 입술을 도톰하고 밝게 만들며, 매니큐어는 혈액 순환이 손끝까지 이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행위들은 젊음과 생식 능력이라는 자연적인 생리 신호들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을 넘어 초정상적인 자극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작고 가늘고 뾰족한 발에 대한 선호는 어느 정도 문화 보편적인 현상이다. 현대 여성들이 발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신는 하이힐이 이를 상징한다. 전족은 작고 가늘고 뾰족한 발에 대한 이런 선호가 정상을 넘어선 방식으로 실현된 문화 현상인 셈이다. 이제 전족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전족을 만들어낸 초정상 자극에 대한 선호는 문화 유전자의 일부이다.

양세욱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2009-10-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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