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말 정치부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청와대를 출입하던 문소영 기자가 대통령 보좌진의 별명을 기사로 써왔다. 그중 반기문 당시 외교보좌관의 별칭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기름장어’였다.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잘 피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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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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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논설실장
반 외교장관과 개인 친분을 떠나 몇몇 기자들의 자의적 호칭을 지면에 실을지 잠깐 고민했다. 현장기자 시절 반 장관을 십여년 취재했다. 특종을 주거나 화끈한 발언을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언론에 평이 좋았던 것은 성실한 답변자세 때문이었다. 특히 뉴스는 없지만 방향을 오도하지 않았다. 기름장어가 그의 특성을 반영하는 듯해 기사를 출고했다. 항의전화 한통쯤은 받을 각오를 했다.
기사가 나간 날,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반 장관이 약간의 불평을 토로했다고 들었다. 문희상 당시 비서실장은 “기자들이 별명을 지어줄 적이 좋을 때”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 장관은 신문사에는 한마디도 항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름장어(slippery eel)란 별명을 이후 내외신 회견에서 껄끄러운 질문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는 데 스스로 활용했다.
기름장어란 별명이 탄생한 역사는 반 장관의 특장을 보여준다. 첫째, 보도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원치 않는 시기에 기사가 엉뚱하게 터지면 외교협상은 삐꾸러진다. 욕 안먹는 보도 조절은 절제와 중용의 도를 갖추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은 비외교적 지도자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북한 김정일은 논외로 친다 해도, 한·미·일 지도자의 언행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둘째, 불쾌감을 공개 표출하지 않는 것 역시 반 장관의 장점이다. 셋째, 약점인 듯싶은 부분을 기회로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을 기름장어라고 부르면 굉장한 빈정거림이 될 수 있었다. 반 장관은 그 단어를 ‘탁월한 외교관’으로 승화시켜버렸다.
기름장어의 힘이 그를 어떤 정권에서도 중용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까지 밀어올렸다. 이제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는 노르웨이, 스웨덴, 미얀마, 오스트리아, 페루, 이집트, 가나 등이다. 중립국이거나 국제정세에 영향을 못 미치는 나라들이었다. 남북이 분단된 갈등의 나라, 세계 경제 10위권의 나라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 것은 반 장관의 ‘외교적 기름칠’ 능력 덕분이라고 본다.
나는 반 장관이 이전 총장에 비해 중간 이상은 할 것으로 믿는다. 그를 넘어 역사에 남으려면 한국 국민과 정부가 기름칠을 도와줘야 한다. 한국의 이해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유엔 192개 회원국 모두가 이제 그에게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는’ 대상이 되었다. 세계는 넓고 사무총장이 할 일은 많다. 반 장관이 한국인임을 당분간 잊어주는 것이 방법이다.
국제 현안인 북한 핵 문제에 유엔 사무총장이 관심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반기문의 중재’가 힘을 가지려면 한국 외교장관식 접근은 피해야 한다. 엄격한 중립성과 독립성을 갖고 한반도 평화를 중재한다는 인식을 북한과 세계에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반 장관이 사무총장에 내정되자마자 북핵 해결의 선봉장으로 내세우려는 일각의 움직임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우리가 반기문을 풀어줄 때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그의 역할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도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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