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주여성 인권보호, 정부가 나서라/최광기 전문MC

[열린세상] 이주여성 인권보호, 정부가 나서라/최광기 전문MC

입력 2005-10-29 00:00
수정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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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런 현수막을 버젓이 걸 수 있을까 싶다.“베트남처녀와 결혼하세요.”농촌뿐 아니라 웬만한 도시 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너무나 친절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로 글들을 써놓았다.

‘초혼, 재혼, 장애인도 가능’,‘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가능’,‘만남에서 결혼까지 7일’ 등. 난 늘 이 현수막을 볼 때마다 너무나 부끄럽다. 베트남 국민들이, 그 여성들이 이 현수막을 본다면 뭐라 할까 싶다.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만큼 국제결혼으로 인한 외국인 이주 여성이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난 6월에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4년 전체 혼인 31만 944건중 한국 남자가 외국인 여성과 국제결혼한 것은 2만 5594건으로 8.2%의 비율이다. 이중 농업에 종사하는 남자의 혼인은 6629건인데 이 가운데 외국여성과 결혼한 것은 1814건으로 27.4%이다. 농어촌 결혼의 4건 중 1건이 국제결혼인 셈이다.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여성은 국적별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이 전체의 90%를 차지했다. 이렇듯 국제결혼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농촌으로 시집을 가는 이주여성의 경우는 한국문화에 대한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그럼에도 한국어, 한국문화, 자녀양육법에 대한 정보 차원의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이런 무관심속에 이주여성들의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남편의 구타와 시집살이로 인해 무작정 집을 나온 여성들은 물론이고 2003년에는 결혼생활 8년동안 구타에 시달린 필리핀 여성이 10층 건물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제결혼한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생활상의 어려움이나 인권침해문제가 상담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외국인이라는 신분상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설 수밖에 없고, 특별한 보호망이 없는 형편이다. 국제결혼한 이주여성의 국적취득은 혼인 후 2년이 지나야 하고, 배우자의 보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남편의 보증이 국적취득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 또는 별거를 하더라도 외국인이라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편, 알선업체나 개인에 의한 국제결혼 사기도 문제가 되는 가운데 올 초 필리핀 정부가 직접 나섰다. 필리핀 당국은 한국남자와 국제결혼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공문을 만들어 한국거주 필리핀 여성들에게 회람시켰다. 내용인즉 한국남자와 결혼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한국에 온 여성들이 결국 술집과 클럽에 남겨져 비참한 처지에 처한 경우를 종종 봤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재인식이 필요하고 외국인이라는 편견에 휩싸여 이주여성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의 인권은 설 자리가 없다. 또한 한국사회가 배타적 단일민족주의와 인종적 편견을 벗어던지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되는 인권침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보완하며 사회적인 관심을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가난을 이겨내고 가족들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여성들이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떠난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이주여성들은 우리들의 할머니들, 어머니들, 누이들을 참 많이도 닮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현수막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 한 구석이 왠지 뻐근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최광기 전문MC
2005-10-2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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