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의사당이 중앙당 품어라

[이경형칼럼] 의사당이 중앙당 품어라

입력 2004-04-29 00:00
수정 200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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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여의도 천막 중앙당사가 지난 26일 내린 비로 천장이 내려앉았다.다음날 박근혜 대표가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 온 외빈을 당사 대신에 국회 대표실에서 접견했다고 한다.총선 과정에서 ‘차떼기 정당’의 잘못을 반성하는 뜻에서 당사 빌딩을 국민에게 헌납하기로 하고 천막 당사를 사용해온 것이다.차제에 각 당이 중앙당을 초경량화하여 명실상부한 원내 정당으로 탈바꿈했으면 한다.

한국정치는 17대 총선을 기점으로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기존 정당들의 원내 정당화 촉진 기류도 이 가운데 하나다.총선 직전,국회는 ‘돈 먹는 하마’격인 지구당을 사실상 없애는 내용으로 정당법을 개정했다.정당의 구성 요건을 종전 ‘국회의원 전 지역구 수의 10분의1에 해당하는 지구당의 설립’에서 ‘5개 시·도당’을 갖추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1987년 6·10항쟁 이후 한국 정치는 민주화를 지향해왔으나,정치 행태는 민주·반민주 구도 아래서 체질화되었던 돈·조직·보스 정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그러나 2004년 4·15총선은 미디어 이용과 네트워크를 통한 ‘돈 안 드는 선거’를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과거 정치가 권위주의에 기반을 둔 수직적 하달체제였다면,새 정치는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수평적 전달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앞으로 선거는 평소 훈련된 조직의 가동과 동원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책을 연결고리로 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이를 확산시켜 나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따라서 선거 때 동원하기 위한 중앙당-시·도지부-지구당-연락사무소의 수직적 조직과 동책,면책의 세포 조직을 평소에 관리할 필요가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7대 국회가 개회되면 국회법을 고쳐 여름과 연말 휴가철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국회를 여는 상시국회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한다.그러면 정치의 중심무대는 더더욱 국회가 될 것이며,사무처 중심의 중앙당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각 정당이 원내 중심으로 정책·선전 활동을 편다면 굳이 거대한 중앙당사를 국회 바깥에 둘 이유가 없다.과거권위주의시대처럼 국회를 더이상 집권 여당의 하향식 당론을 입법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수는 없다.

최근 열린우리당,한나라당 할 것 없이 당의 정체성에 관해 당내 논쟁이 분분하다.같은 당 소속 의원이라고 해도 이념적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당론 복종이라는 구시대적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보수의 주요 잣대가 되는 국가보안법,대북정책,노동관계법 등을 놓고 보면,같은 당소속이라고 해서 의견이 같지 않다.오히려 당을 달리해도 성향이 같은 의원 그룹이 수시로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여야를 떠나 ‘이념의 동지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노동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전체의 22%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 가능성을 예고해 준다.중장기적으로 지금의 정당들이 이념별로 재분화될지 모르지만,정당 활동이 국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이런 상황은 정당간 타협을 지금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당의 축소처럼 하드웨어만 바꾼다고 원내정당화가 이뤄지지 않는다.의원총회가 당론 결정의 실질적인 기구가 되고 의원들의 교차투표(cross voting)활성화를 통해 국회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게 정당 운영의 소프트웨어를 바꾸어야 한다.국회 의사당이 각 정당 활동을 수렴할 수 있을 때,한국의 의회정치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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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제작 이사 khlee@˝
2004-04-29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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