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서울신문 먼저 보기
1981년은 두 살인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서울 원효로 ‘윤노파 피살 사건’과 ‘여대생 박상은씨 피살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수사기관의 강압 수사와 증거 부족으로 피고인들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두 사건 중에서도 윤 노파 피살 사건의 두 달 후 발생한 박씨 피살 사건에 사회적 이목이 더 집중됐다. 1981년 9월 18일 부산 S대 3학년 학생이던 박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인조석 야적장에서 목을 졸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던 시절, 외국 연수를 보내 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박씨는 대학 미전에 입선해 상을 받으려고 서울로 온 길이었다. 용의자는 4명이나 됐다. 3명은 연수를 같이 간 학생이었고 1명은 사업가였다. 먼저 경찰에 연행된 J씨는 그의 치흔이 박씨의 귀에 난 치흔과 일치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단지 애무하다가 난 상처일 뿐이었다. 강압 수사에 자백을 했지만 곧 그는 무죄를 주장했고 검찰은 치흔이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석방했다.
당시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회창 대법관)는 “가장 중요한 증거인 검사 앞 자백이 임의성은 있으나 객관적 정황에 비추어 신빙할 수 없으며 기타 직접적인 범행 증거도 없어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이 났고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박씨 사건은 수사에서 큰 획을 그었다. 전까지는 검사 앞의 임의 자백은 증거로 인정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비록 강압이 없었다고 해도 수사 분위기 때문에 한 자백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음을 법원이 보여줬다. 확실한 물증만이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이 사건으로 자백수사 시대가 끝났다고 보도한 1982년 11월 20일 자 동아일보.
2017-10-16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