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공무원의 입/김동현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공무원의 입/김동현 사회2부 기자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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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4 23:52
수정 2015-04-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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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사회2부 기자
김동현 사회2부 기자
어린 시절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항상 “말조심해라”라고 말씀하셨다.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항상 꺼리셨다. 초등학생이던 자녀에게조차 “말 잘못하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다”며 겁을 줄 정도였다. TV에서 뉴스를 볼 때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나오면 미간을 찌푸리는 것 이외에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머리가 굵어져서 물으니 “생존의 기술”이었다고 답을 했다.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던 공무원들에게 ‘입조심’은 필수였다.

서울시 담당 기자로서 만난 공무원 중 한 명은 자신이 만난 전설적인 선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양반, 대단했지. 시청 앞에 쓰레기 하나라도 있으면 그날은 청소하는 아줌마부터 담당 과장까지 아주 욕을 한 바가지로 얻어먹었지.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가 울면서 나오는 여직원도 한두 명이 아니었어. 입은 거칠었는데 그래도 일 하나는 끝내줬지.” 빨리빨리가 강조되던 시대 공무원의 말은 효율적이고 정확한 것이 미덕이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공무원의 말도 바뀌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정확함과 효율, 구설을 피해 가는 요령이 미덕이던 공무원의 입에 소통과 배려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찾아왔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대통령도, 시장도 소통과 배려를 강조하는데 공무원이 예전처럼 권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무원 입’이 바뀌는구나 하고 감탄할 때쯤 머리를 때리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10일 서울시청 로비에 발달장애인 십수명이 방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 발달장애인은 머리를 바닥에 박았고, 다른 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울시청 로비에서 발달장애 평생교육센터의 조기 설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울시가 아이들을 맡아 보는 어려움을 겪어 보라며 아이들을 놔두고 청사 밖으로 나가 버린 것이다.

발달장애 부모들이 강수를 두면서 시청사엔 긴장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시의 대응은 나쁘지 않았다. 청사 관리를 맡은 부서는 불법 점거 상태에서 대화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안전사고에 대비해 구급대와 의료진 등을 배치했다. 복지 담당 부서도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한 공무원의 말 한마디가 이런 노력을 날려 버렸다. 남겨진 발달장애인들의 안전이 걱정된 취재진이 한 고위 공직자에게 “아이들이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니, 부모가 놔두고 갔는데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죠”라고 잘라 말했다. 부모들이 발달장애 자녀를 놔두고 갔으니 사고 책임은 그들 몫이라는 이야기다. 소통과 배려는커녕 공무원의 생존 비법인 ‘입조심’도, 문제 해결을 위한 ‘효율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그가 이번 발달장애인 농성 해결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서울시 직제표 가장 위에는 시민이 있다. 소통과 배려로 시민들을 섬기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철학이 담긴 직제표다. 하지만 현장에선 공무원의 입에서 이 철학이 얼마나 잘 이행되고 있는지 한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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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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